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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 MY LIFE KITCHEN : 3E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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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 MY LIFE KITCHEN : 3E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하정우 작가는 "키친은 집안에서, 어떤 실내에서,

 

모든 공간 안에서, 공간의 중심(Equator)이 될 수도 있고,

 

편안한 환경(Environment)을 만들어

 

우리의 삶의 좋은 앙상블(Ensemble)을 만들어준다"라고 말한다.

 

작가는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가 우리의 삶에서

 

<3E> 기능을 충실히 전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았고

 

키친을 바라보는 그 만의 새로운 관념을 '그리기'라는 행위를 통하여,

 

컬러로 요리를 하듯이 새로운 시선과

 

다채로운 컬러로 요리된 작품들은 전시장 안에서

 

키친, 그 이상의 특별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 부터는 하정우 작가님 작품들이에요~~~~^^

 

My Signature | Mixed Media on Canvas | 145.5 x 112.1cm | 2019

 

자신이 지향하는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할 때 보통 '시그니처'라 한다.

 

이 작품은 하정우의 내면의 심상을 보여주는 그의 시그니처를

 

다양한 문양과 색감으로 표현하였다.

 

사람과 사물(음식), 풍경은 그의 특유의 컬러로 변주하여,

 

보이는 것 이상의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했다.

 

 

 

<My Signature>

 

하와이는 빛과 컬러가 풍요롭다.

 

작가에게 하와이는 중심을 잡아주는 기준점.

 

바쁜 삶 속 필요한 휴식을 채워주는 발란스의

 

지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내면의 쉼표를 찍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마드는 휴식의 공간이다.

 

이로 인해 그의 캔버스를 채울 수 있는

 

'하와이의 빛과 컬러'는 작품세계에 영향을 주는

 

건강한 재료가 되었으며, 하와이의 정서와 일상에서

 

나오는 그의 작품세계는 작가만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자신이 지향하는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할 때 보통

 

'시그니처'라 한다.

 

이 작품은 하정우의 내면의 심상을 보여주는

 

그의 시그니처를 다양한 문양과 색감으로 표현하였다.

 

사물과 사람(음식), 풍경은 그의 특유의 컬러로 변주하여,

 

보이는 것 이상의 새로운 이미지로 재 탄생했다.

 

브랜드의 본질을 추구하며 예술로 승화시키는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그리고 작가 하정우.

 

두 브랜드 파워의 시그니처 힘이 이 작품에서

 

'앙상블'을 만들어 낸다.

 

 

 

<작가소개>

 

하정우

 

개인전

 

2018 하정우 개인전, VACATION, 표갤러리, 서울

 

2017 하정우 개인전 Plan B, 표갤러리, 서울

 

2016 하정우 개인전 What Else, 호람아트 센터, 서울

 

2015 하정우 개인전 PAUSE 표갤러리LA, LA

 

2014 하정우 개인전, 까르띠에 청담점, 서울

 

2013 하정우 개인전 Walter Wickiser Gallery, 뉴욕

 

2012 하정우 개인전 Mask, H.art Gallery, 서울

 

2011 삐에로, 동원 갤러리, 서울

 

2011 삐에로, 인사아트센터, 서울

 

2010 하정우 개인전 동아일보 디지털미디어센터, 서울

 

2010 하정우 기획초대 Horizon of Passion, 닥터박 갤러리, 경기도

 

 

 

단체전

 

2019 아시아호텔아트페어, 파라다이스, 부산

 

2019 화랑미술제, 코엑스, 서울

 

2018 KIAF 한국국제아트페어, 코엑스, 서울

 

2018 아시아호텔아트페어, 인터콘티넨탈, 서울

 

2018 화랑미술제, 코엑스, 서울

 

2017 KIAF 한국국제아트페어, 코엑스, 서울

 

2017 아시아호텔아트페어, 인터콘티넨탈, 서울

 

2017 화랑미술제, 코엑스, 서울

 

2016 스푼아트페어, 킨텍스, 일산

 

2016 KIAF 한국국제아트페어, 코엑스, 서울

 

2016 연애의 온도, 서울미술관, 서울

 

2016 아시아호텔아트페어, JW 메리어트 강남, 서울

 

2016 화랑미술제, 코엑스, 서울

 

2015 스푼아트페어,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2015 KIAF 한국국제아트페어, 코엑스, 서울

 

2015 LA Art Show, Los Angeles Convention Center, 로스앤젤레스

 

2014 The Prudential Eye Awards 특별전, Suntec City, 싱가폴

 

2014 KIAF 한국국제아트페어, 코엑스, 서울

 

2013 프랑스 아트페어, 파리, 프랑스

 

2013 Beyond the Face, 비원갤러리, 서울

 

2013 스타크래프트, 청주공예비엔날레, 청주

 

2012 홍콩아트페어 ART HK12, 홍콩컨벤션센터, 중국

 

2011 KIAF 한국국제아트페어, 코엑스, 서울

 

2010 CHUPOP'Sart, 산토리니 서울, 서울

 

2010 ARTSTART 롯데갤러리, 부산, 일산

 

 

 

 

 

 

 

Tuna | Mixed Media on Canvas | 91 x 116.8cm | 2019

 

키친을 보는 그 만의 새로운 시선과 다채로운 컬러로

 

요리된 작품들은 전시장 안에서

 

키친 그 이상의 특별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Kitchen Garden | Mixed Media on Canvas | 162.2 x 130.3cm | 2019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느낀다.

 

바람이 불었고 하늘에는 다정한 달이 어여쁘게 떠 있었다.

 

 

 

 

 

Get into the Rhythm | Mixed Media on Canvas | 193.9 x 130.3cm | 2019

 

 

 

 

 

Get onto the Rhythm | Mixed Media on Canvas | 193.9 x 130.3cm | 2019

 

 

 

 

 

 

Self-Portrait | Mixed Media on Panel | 101 x 95.5cm | 2019

 

하정우는 새로운 영화를 찍을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촬영이 끝나거나 촬영하는 순간순간 쉬는 시간에도

 

무대 세트의 합판에 그림을 그리고 스케치한다.

 

 

 

 

 

 

Blue Pot | Mixed Media on Canvas |116.8 x 91cm | 2019

 

예전의 키친이 여성이 주체적인 영역과 이미지였다면,

 

현재는, 남녀노소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가족 단위로 함께 확대 되면서

 

현대인의 생활의 중심이 리빙에서 키친으로 확대되었다.

 

 

 

 

 

 

Waikiki Makiki | Mixed Media on Canvas | 116.8 x 91cm | 2019

 

하정우 작가는 "키친은 집안에서, 어떤 실내에서,

 

모든 공간 안에서, 공간의 중심(Equator)이 될 수도 있고,

 

편안한 환경(Environment)을 만들어

 

우리의 삶의 좋은 앙상블(Ensemble)을 만들어준다"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또한

 

우리의 삶에서 작가가 만들어 낸 <3E>의 기능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Yellow Pot | Mixed Media on Canvas | 116.8 x 91cm | 2019

 

 

 

 

 

 

Grapeseed | Truffle | Mixed Media on Canvas | 53 x 45.5cm | 2019

 

일관된 형식성, 규칙성이 드러나 보인다.

 

그러나 틀에 바혀 있지 않은 하정우의 작품은

 

흥분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매우 감각적이다.

 

그림 곳곳에는 작가의 유머 DNA를 볼 수 있다.

 

 

 

Olive | Avocado | Mixed Media on Canvas | 53 x 45.5cm | 2019

 

그림으로 요리하다.

 

상상적 사유: 블루, 생선 | 화인:고기 | 

 

블래&화이트: 양념 | 녹색:채소 | 오렌지: 과일

 

 

 

 

 

Neighbor | Mixed Media on Canvas | 83 x 79cm | 2019

 

"촬영할 때에도, 여행할 때에도, 휴식을 취할 때에도

 

그림은 빠져서는 안 되는 나의 에너지이자 원동력이다."

 

 

 

 

 

 

 

Festival | Mixed Media on Canvas | 90.9 x 72.7cm | 2019

 

 

 

 

 

 

Montagna | Mixed Media on Canvas | 90.9 x 72.7cm | 2019

 

 

 

 

 

 

Good luck | Mixed Media on Canvas | 90.9 x 72.7cm | 2019

 

하와이는 빛과 컬러가 풍요롭다.

 

작가에게 하와이는 중심을 잡아주는 기준점.

 

바쁜 삶 속 필요한 휴식을 채워주는

 

발란스의 지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내면의 쉼표를 찍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휴식의 공간이다.

 

 

 

 

 

 

Signature | Mixed Media on Canvas | 53 x 45.5cm | 2019

 

브랜드의 본질을 추구하며 예술로 승화시키는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그리고 작가 하정우.

 

두 브랜드 파워의 시그니처 힘이 이번 전시에서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Majestic | Mixed Media on Canvas | 145.5 x 112.1cm | 2019

 

 

 

 

 

 

Champagne Shawer | Mixed Media on Canvas | 162.2 x 130.3cm | 2019

 

 

 

 

 

 

Just Do It | Mixed Media on Canvas | 145.5 x 112.1cm | 2019

 

인문들은 나의 메시지를 압축한다.

 

다래초운 색채들의 버무림.

 

때로는 기하 형태로 번안한 사물들이 지나가며

 

관계를 이룬다.

 

 

 

 

<내가 본 전시회 느낌>

 

하정우 작가님 작품들의 주제는 주로 인물, , 동물들을 주로 그리셨어요.

 

하정우 작가님의 추상주의적 기법으로 마치 한국의 피카소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하정우 작가님의 작품을 보게 되어서 행운이였고 다음 전시회가 또 기대가 되네요.

 

 

 

 

이 작품 사진들은 작가의 촬영 허락으로 제작 하였습니다.  

 

이 작품 사진들 안의 그림들은 작가의 허락 없이 무단 사용을 할 수 없습니다

 

 

 

아래는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쇼룸 위치에요~~~~^^

 

 

 

 

 

아래는 하정우 작가님과 같은 입체주의를 찾아보았어요~~~~^^

 

<입체파>

 

'입방체' 또는 '정육면체'라는 뜻의 단어 '큐브(cube)' 20세기 현대미술의 포문을 여는 대표적인 화파의 명칭으로 쓰이게 된 데에는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공이 컸다. 1908년에 그는 한때 야수파(Fauvism)의 동지였던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과감한 변신을 알리는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브라크가 그 작품들을 같은 해 9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에 출품하자 심사위원이었던 마티스는 브라크를 낙선시켰다. 이 당시 마티스는 비평가 루이 복셀(Louis Vauxcelles)에게 브라크가 그려 놓은 "작은 입방체들(petit cubes)"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확실히 브라크의 화폭에는 입방체로 환원된 듯한 집과 언덕, 나무들이 가득했다.

 

●피카소,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그리다

입체주의(Cubism)라는 용어가 활자화되고 비로소 미술계에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1909 3월 이후 들어서였다. 복셀이 마티스를 인용해 브라크를 비평한 『르 피가로(Le Figaro)』지의 기사를 필두로 점차 '입체주의'라는 명칭이 공공연해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용어의 기원을 브라크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반해 기법과 형식상의 기원은 대체로 스페인 출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907년에 발표한 [아비뇽의 아가씨들]에 둔다. 먼저 화가의 지인들에게 공개된 이 작품은 가로, 세로 2미터가 넘는 대형 캔버스로 제작되었고, 그 위에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다섯 명의 누드 여인상이 그려져 있었다.

 

1906년 경부터 구상된 이 작품은 피카소가 그 해 10월에 사망한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 [목욕하는 사람들] 연작과 마티스의 [생의 기쁨](1905-1906), [푸른 누드(비스크라의 추억)](1907)과 같은 작품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학자들에 따르면 마티스 역시 세잔의 누드화를 소유하고 있었을 정도로 심취해 있었고, 피카소는 당시 미술계에서 가장 진보적으로 평가되면서도 화상들의 후원으로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었던 마티스를 꽤나 의식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피카소는 마티스를 능가하는 보다 혁신적인 누드화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카소로서는 야수파 화가들이 참조한 아프리카의 조각과 가면들을 보다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새로움을 갈망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원시 문명은 더할 나위 없는 소재였다.

 

이 시기 피카소는 이미 이베리아 가면의 형태를 작품에 도입한 상태였지만 파리 트로카데로의 인류학 박물관을 다녀오고 나서 그는 거의 마무리된 [아비뇽의 아가씨들]의 일부를 수정했다. 주로 오른쪽 두 여인의 얼굴을 극단적으로 바꿈으로써 다른 여인들의 얼굴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만들고 화면의 조화마저 깨뜨렸다.

 

오른쪽 상단 여인의 가슴은 검정색 사선이 반복되어 음영 처리된 듯한 마름모 형태로 되어 있는데, 학자들은 이를 세잔이 사용한 파사주(passage) 기법을 응용한 것으로 분석한다.

 

●브라크와 피카소의 입체주의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과 아프리카의 조각이 피카소에게 새로운 조형의 원리를 실험하는데 영감을 제공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또 한 명의 야심 찬 화가가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바로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브라크였다. 1907 11월 말 또는 12월 초, 문학가이자 비평가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는 브라크를 데리고 피카소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브라크는 이 때 막 완성된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충격은 곧 도전으로 이어졌다. 전해까지만 해도 야수파 계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브라크는 [큰 누드](1907-1908)와 에스타크(L'estaque)에서 여름 내내 그린 혁신적인 풍경화들을 통해 세잔에 대한 연구와 공간에 대한 자신만의 분석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마티스가 "작은 입방체들"이라고 부른 형태들이었고, [살롱 도톤느]에서 탈락한 뒤 독일 태생의 젊은 화상 칸바일러(Daniel-Henry Kanweiler)의 화랑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들이었다.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과 아프리카의 조각이 피카소에게 새로운 조형의 원리를 실험하는데 영감을 제공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또 한 명의 야심 찬 화가가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바로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브라크였다. 1907 11월 말 또는 12월 초, 문학가이자 비평가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는 브라크를 데리고 피카소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브라크는 이 때 막 완성된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충격은 곧 도전으로 이어졌다. 전해까지만 해도 야수파 계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브라크는 [큰 누드](1907-1908)와 에스타크(L'estaque)에서 여름 내내 그린 혁신적인 풍경화들을 통해 세잔에 대한 연구와 공간에 대한 자신만의 분석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마티스가 "작은 입방체들"이라고 부른 형태들이었고, [살롱 도톤느]에서 탈락한 뒤 독일 태생의 젊은 화상 칸바일러(Daniel-Henry Kanweiler)의 화랑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들이었다.

 

●입체주의의 확산, '퓌토 그룹'과 살롱입체주의

피카소와 브라크 외에도 후안 그리스(Juan Gris)를 비롯해, 1910년을 전후로 파리의 젊은 세대 화가들 가운데에는 입체주의를 자처하는 일련의 화가들이 나타났다. 1911년에 열린 [독립미술전(Salon des Indépendants)]에 참가한 장 메쳉제(Jean Metzinger), 알베르 글레이즈(Albert Gleizes),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그리고 앙리 르 포코니에(Henri Le Fauconnier)와 같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또한 일명 '퓌토 그룹'이라 불리는 이들은 작크 비용(Jacques Villon)을 중심으로 그의 퓌토(Pureaux)에 있는 스튜디오에 자주 모이던 뒤샹 형제들(Raymond Duchamp-Villon, Marcel Duchamp)과 다수의 화가와 조각가들 역시 입체주의자로 간주되었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칸바일러의 화랑을 중심으로 작업하며 '화랑 입체주의자'로 불린 반면, 이들은 '살롱 입체주의자'라 불리며 공공의 전시와 출판 활동을 병행했다.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미술가들의 징집과 전사로 인해 타격을 입긴 했지만, 입체주의는 파리를 넘어 유럽과 미국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사실상 입체주의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았던 만큼 이 시기 새로운 시도를 한 미술가라면 대체로 입체주의와 연관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피카소와 브라크를 필두로 입체주의가 시도한 대상과 공간에 대한 이해와 그 표현 형식은 이후 이탈리아 미래주의와 러시아 광선주의, 절대주의, 네덜란드의 데 스틸(De Stijl), 그리고 다다(Dada)와 구축주의와 같은 20세기 각각의 미술, 디자인, 건축과 같은 예술 전반으로 이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입체파 (사조와 장르, 이민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7518&cid=58862&categoryId=58873

 

 

<입체파>

입체파 또는 큐비즘(Cubism) 20세기 초에 프랑스에 일어난 서양미술 표현 양식의 하나를 일컫는다. 입체주의라고도 한다.

 

●큐비즘(입체파)의 유래

큐비즘이라는 낱말이 처음 쓰여진 동기는 조르즈 브라크의 풍경화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 브라크는 프랑스의 남쪽 지중해 연안 지방 레스타크 (L'Estaque)에서 사생을 하면서 풍경화를 그렸으며 이 풍경화를 두고 비평가는 입체적 희한함 (bizarreries cubique) 이라고 풍자하였으며, 이 낱말에서 후에 브라크의 표현 양식을 본 딴 그림들 및 화가들의 경향을 큐비즘이라 부르게 되었다.

 

브라크는 레스타크 지방의 풍경화를 그리면서 대상을 입체적 공간으로 나누어 여러가지 원색을 칠하여 자연을 재구성 하였다. 이와 같은 실험적인 공간 구성과 대상의 표현 양식에서 출발하여 브라크는 점차 눈에 두드러진 입체적인 형태, 원통형, 입방형, 원추형 따위를 종래의 선이나 면을 대신한 표현 수법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브라크가 추구한 입체적 표현 양식은 자연 대상을 순수한 그림 대상으로 완전히 전환시키는 것이었다.이러한 입체주의 작품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관점으로 사물을 해체 했다 다시 조화롭게 접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레서 어떻게 화면을 아름답게 분해 할 것인가 하는것 이 중요했다

 

●분석적 입체주의

입체주의(큐비즘)의 한 종류이다. 1907-1908년대에 시작된 고갱 중심의 조각적 형태와 복수시점을 중심으로 하던 초기 입체주의와 달리 복수시점을 형태파편화했다. 화면의 파편화로 발전시켜 일종의 전개도 형태로 만들어낸 피카소, 브라크 중심의 입체주의. 이후 종합적 입체주의로 발점되어 파삐에 꼴레 등의 형태종합으로 발전하였다.

 

●큐비즘의 화가들

폴 세잔: 큐비즘의 동기

조르즈 브라크

파블로 피카소: 본격적인 큐비즘의 시작. 《아비뇽의 처녀들》.

 

위키대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E%85%EC%B2%B4%ED%8C%8C

 

 

 

입체주의

 

1. 개요

20세기 초반에 시작된 서양미술 사조 갈래 중의 하나. 폴 세잔이 입체주의의 동기를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동시대 많은 예술가들이 이러한 사조를 다양하게 시도하고 거쳐갔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예술가는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가 있으며, 그 외에 레제, 들로네 등이 입체주의 화가였다.

사물을 한 방향에서 바라보던,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했던 것이 이전까지의 정물화였다면, 입체주의는 사물을 여러 방향에서 본 모습을 한 화폭 안에 담아낸, 말하자면 혁신적인 화법이었다.

 

2. 명명

입체주의의 기원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과 브라크의 <에스타크의 집>이다. <에스타크의 집>을 본 앙리 마티스가 조그마한 입방체(cube)들을 모아놓은 것 같다고 평가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1908년 미술 비평가 루이 보셀(Louis Vauxcelles)이 브라크의 작품을 비평할 때 마티스를 인용하면서 '큐비즘'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명칭이 굳어졌다.

그런 이유로 '입체주의'는 오역이고, '입방체주의'가 맞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계원예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미술비평가 이영준이 대표적인 사례

 

3. 발전 과정

입체파는 크게 다음의 세 시기를 거치며 발전했다.

 

•초기 입체파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이어진 단계. 자연을 원기둥, , 원뿔과 같은 형태로 처리해야 한다고 본 폴 세잔의 영향에 따라 대상의 형태를 단순화하고, 원근법의 1점 투시가 아닌 복수의 시점을 화면에 표현하려 하였다.

 

 

•분석적 입체파

1910년부터 1912년까지 이어진 단계.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비롯한 초기 입체파 작품에서는 어떤 대상인지 직관적으로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으나, 이 단계에서는 본격적으로 대상을 기하학적인 단위로 해체하여 재구성하는 수준에 이른다. 또한 명암과 원근 뿐만 아니라 색채 역시 배제되어 녹색과 황토색 등으로 한정되었다.

 

 

•종합적 입체파

1912년부터 1914년경까지 이어진 단계. 이 단계에 이르면 형태의 해체가 극단적으로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원래 무슨 물체인지 알아볼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브라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실의 다양한 오브제를 붙이는 콜라주, 파피에 콜레(papiers colle)의 기법을 도입하였다. 형태를 그대로 묘사해서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물의 소재를 연상시키는 오브제를 붙이므로써 실제 사물의 느낌을 주는 것이다.

 

4. 예술사적 의의와 특징

 

입체주의는 단순히 3차원의 형태를 2차원인 캔버스에 억지로 쑤셔 넣으려고 한 사람들이 아니다. 입체주의가 갖는 예술사적 의의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 이어져온 원근법의 투시 개념을 탈피했다는 점이다. 19세기 이전의 서양 미술이 명암과 원근을 이용해 3차원의 세상을 2차원의 화폭에 담은 것과는 달리, 입체주의 화가들은 3차원의 대상을 여러 시점으로 분해해서 화폭에 재구성하였다. 비슷한 시기 활동한 야수파가 색채 사용에서 혁신을 만들어냈다면, 입체파는 형태 표현에서 과거를 탈피했다.

 

화파로서의 입체파는 1차 세계 대전을 지나며 끝났으나, 이후 현대 미술의 다양한 사조에 큰 영향을 주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단순히 '내가 그려도 이것보다는 잘 그리겠다'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전통적인 회화의 한계를 탈피하기 위한 시도가 그 그림의 밑바탕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1].

 

 

5. 주요 예술가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조르조 브라크

•디에고 리베라

•알베르토 자코메티

•장 메챙제

 

•오르피즘: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회화 사조로, 입체주의에서 사라진 색채를 보다 자유롭게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페르낭 레제

로베르 들로네

 

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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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파 작가 - 파블로 피카소[ Pablo Ruiz y Picasso]>

스페인 태생이며 프랑스에서 활동한 입체파 화가. 프랑스 미술에 영향을 받아 파리로 이주하였으며 르누아르, 툴루즈, 뭉크, 고갱, 고흐 등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 초기 청색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미술양식을 창조하였고 20세기 최고의 거장이 되었다.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출생-사망 : 1881.10.25 ~ 1973.4.8 

국적 : 스페인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에스파냐 말라가 

주요작품 :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 《게르니카》(1937)

 

1881 10 25일 에스파냐 말라가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미술교사였다.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급학교에서는 읽기와 쓰기를 어려워했고 졸업이 어려울 정도로 학습능력이 저조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14세 때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였는데, 이때부터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미술공부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출석을 거의 하지 않았고 학교 규칙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다시 마드리드에 있는 왕립미술학교에 다녔지만 결과는 같았다. 17세 때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왔으며 이 무렵부터 프랑스와 북유럽의 미술운동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특히 A.르누아르, H.툴루즈 로트레크, E.뭉크 등의 화법에 매료되어 이를 습득하려고 노력하였다.

 

1900년 그가 19세 때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하였고, 다음 해 재차 방문하여 몽마르트르를 중심으로 자유로운 제작활동을 하고 있던 젊은 보헤미안의 무리에 합류하였다. 피카소는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 인상파들의 작품을 접했으며 고갱의 원시주의, 고흐의 열정적 표현주의 등의 영향도 받았다. 당시 피카소는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몰랐고 세계적인 도시 파리의 모습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화려함의 이면에 가려진 빈곤과 비참함을 목격하였으며 질병과 성병이 가득한 도시의 가난을 두려워하였다.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였으며 파리의 구석진 다락방에서 추위와 가난을 인내하며 지냈다. 하지만 당시의 요절한 화가들에 비하면 피카소는 단기간에 명성을 얻게 되었다. 20세에 첫 전시회를 열었고 그의 상황은 나아지기 시작하였다. 피카소는 파리의 비참한 생활상에 주목하여 거지와 가난한 가족 등을 그렸다.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때를 피카소의청색시대(靑色時代)’라고 부른다. 이때 제작된 작품들은 하층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 참상과 고독감이 두드러졌다. 또한 파리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지낸 절친한 친구였던 카를로스 카사헤마스가 비극적인 자살을 함으로써 그의 충격은 더했다. 1903년에 제작된 《인생》은 당시 피카소의 혼란스러웠던 감정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1904년 몽마르트르에 정주하면서부터는 연애를 하였고 그림의 색조가 청색에서 장밋빛 시대로 바뀌면서 색상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과거의 에스파냐예술, 카탈루냐지방의 중세조각, E.그레코, L.F.J.고야 등이 지닌 독특한 단순화와 엄격성이 가미되어 갔다. 테마는 작품 《공 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소녀》 《광대》 《곡예사가족》 등에서처럼 곡예사들을 묘사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어릿광대나 곡예사는 무대 위의 모습이 아니고 그 생활의 이면을 파헤친 것이었다.

 

1905년 피카소는 파리에서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다. 기욤 아폴리네르를 만났고 다음 해에는 H.마티스와 교유하였다. 그러나 작풍은 P.세잔의 형태관을 살려나가 점점 단순화되고, 1907년의 그의 대표작인《아비뇽의 처녀들》에 이르러서는 아프리카 흑인 조각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는 동시에 형태분석(形態分析)이 비로소 구체화하기 시작하였다.

 

조르쥬 브라크와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으로, 그와 함께 공동작업으로 입체주의 미술 양식을 창안하였다. 1909년에는 분석적 입체파, 1912년부터는 종합적 입체파시대에 들어갔다. 이 무렵 그는 이미 20세기 회화의 최대 거장이 되었고, 종합적 입체파수법을 1923년경까지 계속하면서 여러 가지 수법을 차례대로 전개하였는데, 활동범위도 J.콕토와 알게 되면서 무대장치를 담당하는 등 점점 확대되어 갔다. 1915년 《볼라르상()》과 같은 사실적인 초상을 그리고, 1920년부터는 《세 악사》 등 신고전주의를, 다시 1925년에는 제1회 쉬르레알리슴전()에 참가하였다.

 

1934년에는 에스파냐를 여행하여 투우를 소재로 그렸으며 1936년의 에스파냐내란 때는 인민전선을 지지하고, 다음 해 프랑코장군에 대한 적의와 증오를 시와 판화로 나타낸 연작 《프랑코의 꿈과 허언(虛言)》 및 전쟁의 비극과 잔학상을 초인적인 예리한 시각과 독자적 스타일로 그려낸 세기의 대벽화 《게르니카》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통곡하는 여인》도 이 무렵의 작품이며 이때부터 피카소 특유의 표현주의로 불리는 괴기한 표현법이 나타났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해는 에스파냐에서 지냈으나 다음 해 독일군의 파리 침입 직후 파리로 돌아와 레지스탕스 지하운동 투사들과 교유하고, 1944년 종전 후는 프랑스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주로 남프랑스의 바닷가에서 생활하면서 그리스신화 등에서 모티프를 취하여 밝고 목가적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독특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도기(陶器) 제작과 조각에도 정열을 쏟고 석판화의 제작도 많아 이 영역에서도 새로운 수법을 창조하였다. 그 후 6·25전쟁을 주제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1951), 《전쟁과 평화》(1952) 등의 대작을 제작하여, 현대미술의 리더로서 거장다운 활약을 하였다.

 

파블로 피카소 연보

출생 1881.10.25~ 사망 1973.4.8

1881: 10 25일 에스파냐 말라가 출생.

1895: 바르셀로나로 이주.

 1900:처음으로 파리 방문.

 1901:첫 개인 전시회를 개최.

 1903: 《기타 치는 눈먼 노인》 제작.

 1907:《아비뇽의 아가씨들》 제작.

 1920:《세 악사》 제작.

 1925:1회 쉬르레알리슴전에 참가.

 1937:《게르니카》, 《우는 여인》 등 제작.

 1944: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

 1951: 《한국에서의 학살》 제작.

 1973: 4 8일에 사망.

 

[네이버 지식백과] 파블로 피카소 [Pablo Ruiz y Picasso]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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