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 임미령 작가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도연 임미령 작가님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전공을 하셨어요~~~~^^
개인전은 2019년 개인전(인사아트센터, 서울)을 비롯 총 13회 전시를 하셨어요~~^^
단체전은 1984~2018년 까지 총 130여회 이상 전시를 하셨어요~~~^^
Road | 228 x 182cm | Acrylic on canvas | 2019
My way2 | 162 x 131cm | Acrylic on canvas | 2019
My way1 | 162 x 131cm | Acrylic on canvas | 2019
The Road | 260 x 194cm | Acrylic on canvas | 2017
The Earth | 260 x 194cm | Acrylic on canvas | 2017
The Mountain | 228 x 182cm | Acrylic on canvas | 2018
Apple. | 91 x 73cm | Acrylic on canvas | 2018
Paper boar. | 91 x 73cm | Acrylic on canvas | 2018
House. | 91 x 73cm | Acrylic on canvas | 2018
Car. | 91 x 73cm | Acrylic on canvas | 2018
The Horse. | 228 x 182cm | Acrylic on canvas | 2018
The Medition. | 228 x 182cm | Acrylic on canvas | 2018
The Forest. | 162 x 131cm | Acrylic on canvas | 2018
The Flower. | 162 x 131cm | Acrylic on canvas | 2018
Another World. | 162 x 131cm | Acrylic on canvas | 2017
B. Road. | 131 x 131cm | Acrylic on canvas | 2018
G. Road. | 131 x 131cm | Acrylic on canvas | 2018
<내가 본 전시회 느낌>
임미령 작가님 작품들을 볼 때 색상들의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임미령 작가님의 작품들은 잭슨폴록의 그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색상들의 자유로운 표현을 작품에 하셨다는 것에 다시한번 작가님의 뛰어난 창의력에 놀랐어요~~~~^^
임미령 작가님의 작품을 보게 되어서 행운이였고 다음 전시회가 또 기대가 되네요.
이 작품 사진들은 작가의 촬영 허락으로 제작 하였습니다.
이 작품 사진들 안의 그림들은 작가의 허락 없이 무단 사용을 할 수 없습니다.
This picture was filmed under the artist’s agreement.
The pictures in it may not be used without the artist’s permission.
아래는 인사아트갤러리 위치에요~~~~^^
아래는 최미진 작가님의 작품 같은 추상주의 및 몬드리안에 관련해서 찾아 보았어요~~~~~^^
추상미술[ abstract , 抽象美術 ]
일반적으로 그 표현이 물적(物的) ·객관적인 대상을 떠나, 주관적 순수 구성을 표시하는 미술.
이 사조는 이미 낭만주의의 시대에 배태(胚胎)되었으나, 예술가가 의식적 ·집중적으로 지향하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이며, 흔히 1910년의칸딘스키의 작품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추상이라는 관념을 처음 체계화한 것은 큐비즘이다. 대상을 분석적 ·구성적 ·기하학적으로 파악한 것이 이 운동이었고, 들로네의 오르피즘(orphisme)도몬드리안의 데 스테일(De stijl)도 오장팡과 르 코르뷔지에의퓌리슴(purisme:순수주의)도 모두 큐비즘의 이념 없이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추상미술은 명백히 관념미술이며, 엄밀한 의미에서오너먼트[裝飾文樣]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추상미술에는 순기하학적 ·주지주의적경향과 낭만주의적 ·표현주의적 경향이 있다. 전자는 들로네와 몬드리안 등이고, 후자는 칸딘스키와 클레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시명명(命名)된 ‘뜨거운 추상’이 표현주의적이며 격렬한 색채의 약동을 추구하고, 한편 ‘차가운 추상’이 이지적(理知的)인 공간을 추구하는 것을 보아도, 추상미술이지성에 중점을 두는가, 감정에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서 크게 나누어지는 것을 알 수있다.
추상미술은 초현실주의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초현실주의의 유력한 무기인오토마티슴(automatisme:자동기술법)은 설사 보는 사람이 거기에 갖가지기지(旣知)의 영상(映像)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제작의 과정 그 자체는 순수한 추상적충동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효시로 하는 몇몇선구적(先驅的)인 추상적 작품을 보아도, 인간이 자연과 멀어지는 것이 얼마나어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추상미술 [abstract art, 抽象美術]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47572&ref=y&mobile&cid=40942&categoryId=33048
< 추상화>
1. 抽象畫
미술에서 사물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자연적,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점, 선, 면, 색채 등의 표현을 목표로 하는 그림, 혹은 그 기법. 보통 부드러운 선으로 이루어진 것은 뜨거운 추상, 직선으로 간단명료하게 구성된 것은 차가운 추상이라고 부른다. 앞의 예로는 칸딘스키가 있고, 뒤의 예로는 몬드리안이 있다.
원래 목적은 현실의 정치, 이념, 경제논리 등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미적인 것만을 표현하자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그 결과 선전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인물 묘사를 배제하게 되었다. 나아가 클레멘트 그린버그 같은 이론가는 회화는 회화다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회화 이외의 요소는 전부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무슨 의미냐면, 서사는 문학에서 온 것이니 회화에서 스토리도 배제해야 하고[1], 입체감은 조각에서 온 것이니 음영같은 것도 넣지 말아야 하며, 공간감은 건축에서 온 것이니 원근법도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자 점, 선, 면, 색채 같은 조형요소 그 자체의 아름다움만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물 묘사마저 거부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어찌보면 근본주의?
이는 당시 모더니즘을 추종하던 다른 분야의 예술가, 건축가, 이론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같은 건축가나 디자이너 모홀리 나기가 대표적. 이들은 사물에는 핵심구조가 있으며, 이 구조를 추려내는 것이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추상화한 결과물은 누구나 좋아하고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 때문인지 모더니즘은 회화, 디자인, 건축 할 것 없이 굉장히 단순한 구조를 강조하게 되었다. less is more
하지만 이렇게 모든 대상을 미분화미분화시키고 단순화시켜 버리는 방식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는데, 오래 보면 지루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미술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억누르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후대 예술가들은 이에 반발하는 작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추상이 탐구하고 개발한 각종 이론과 기법들은 오늘날 디자인 분야에서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당장 미스 반 데어 로에나 칸딘스키 등이 참여했던 디자인 학교가 바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인 바우하우스다. 애플사에서 강조하는 단순한 미니멀리즘 디자인도 어찌보면 이 영향권 하에 있는 셈.
2. 抽象化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거나 되거나 한다는 뜻이다.
2.1. abstraction
abstraction, 抽象化
전산학에서 추상화(抽象化)는 복잡한 자료, 모듈, 시스템 등으로부터 핵심적인 부분을 간추려 내는 것을 말한다.
주어진 문제나 시스템 중에서 중요하고 관계있는 부분만을 분리하여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작업. 이러한 과정은 원래 문제에서 구체적인 사항은 되도록 생략하고 핵심이 되는 원리만을 따지기 때문에 원래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수학적인 모델이 나오기도 한다. 이 기법은 복잡한 문제나 시스템을 이해하거나 설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참고: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B6%94%EC%83%81%ED%99%94
<추상 (예술)>
예술에서 추상이란 구상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어떤 대상 혹은 세계로부터 하나의 상을 추려내어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더니즘 이후 장식 중심의 미술에서 벗어나 세계를 조형적으로 정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것이 추상미술의 원동력이 되었다.
분류
추상은 그 형태나 의도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분리된다. 형태적으로는 바실리 칸딘스키처럼 곡선을 위주로 기하학적이지 않은 이미지들을 표현한 서정적 추상이 있는 한편, 피트 몬드리안의 경우처럼 엄밀한 구획과 기하학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기하학적 추상도 있다. 의도상으로는 대상을 단순히 간략화해 표현하는 경우에서부터,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여 이를 예술로 표현하려는 경우까지 다양하다.
관련 예술가
바실리 칸딘스키
피트 몬드리안
카지미르 말레비치
참고: 위키디피아
https://ko.wikipedia.org/wiki/%EC%B6%94%EC%83%81_(%EC%98%88%EC%88%A0)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 , Der Abstrakte Expressionismus] >
일반적으로 제2차세계대전 후, 1950년대의 미국 추상 회화를 가리킨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1919 년 『슈투름』지에서 오스발트 헤르초크(Oswald Herzog)가 처음으로 이러한 말을 표제에 사용하였다. 또한 미국에서는 1929년 알프렛 바 2세(Alfred H Barr Jr.)가 칸딘스키 초기의 유동적인 추상회화를 이러한 말로 불렀다. 이 말이 뜻하는 ‘자아와 개인적인 고뇌(슈메르츠 Schmerz[독])를 연상시킨다.’로부터 로젠버그는 〈액션 페인팅〉이라고 하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액션 페인팅〉이라는 말은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은 ‘자기표현과는 무관함’, ‘비개인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미국 회화에 있어서 엄밀하게는 모순된 명칭이라 하나 가장 빈번히 사용된다. 이외에 서양에서는 세계 제2차대전 후의 ‘차가운 추상’ (기하학적 추상주의)에 대한 ‘뜨거운추상’(⇒타시슴, 앵포르멜)도 널리 추상표현주의라고 불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 Der Abstrakte Expressionismus]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3781&cid=42635&categoryId=42635
<잭슨 폴록[ Paul Jackson Pollock] >
추상표현주의양식의 액션 페인팅 대표작가. 유럽 미술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미술사상을 보여주었다. 초반에는 심하게 변형된 인간이나 동물의 이미지를 그렸고, 48년 무렵부터는 캔바스 위에 물감을 쏟으며 그림을 그리는 ‘드리핑 페인팅’ 수법을 만들어 냈다.
외국어 표기 : Paul Jackson Pollock
출생 - 사망 : 1912. 1. 28. ~ 1956. 8. 11.
출생지 : 미국 와이오밍주 코디
직업 : 화가
작품: 비밀의 수호자들(1943년), 1(제31번)(1950), 블루 폴즈(1953년)
미국의 화가로, 추상표현주의(액션 페인팅)의 대표적인 작가. 와이오밍주 코디에서 출생, 뉴욕주 롱아일랜드 햄트햄프턴에서 사망. 1930년 뉴욕에 나가,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배웠고, 스승 토마스 하트 펜튼의 ‘지방주의’, 멕시코의 벽화 운동 등의 영향을 거쳐 피카소의 『게르니카』나 미로에게 자극받아 1930년대 말부터 심하게 변형된 인간이나 동물의 이미지를 그린 그림. 40년대에는 뉴욕에 망명한 쉬르레알리스트, 특히 안드레 마송의 영향을 받는다. 인디언의 토템이나 그리스 신화 등을 주제로 융(스위스의 정신병리학자, Carl Gustav Jung, 1875~1961)적인 환상을 그렸으나, 48년 무렵부터는 마루에 커다란 캔바스를 펴놓고, ‘그림 속에 들어가' 유동성의 그림 물감을 쏟으면서 그리는 소위 ‘드리핑 페인팅’ 수법을 만들어 냈다. 격심한 선적(線跡)이 화면 가득히 서로 얽히는 웅장한 공간에는 이미지의 발생 상태가 직접 행위로 포착되어 있다. 1951년경 백과 흑만으로 거대한 얼굴 시리즈를 그렸을 때부터 알코올 중독이 악화되었고 1956년 여름,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유럽 미술의 영향 밑에서 빠져 나가면서 유니크한 세계를 창시한 그의 생애는 미국의 독자적 미술사상 최초의 탄생을 보여 주는 극적인 것이었다. 대표작은 『비밀의 수호자들』(1943, 샌프란시스코 데 영미술관), 『1(제31번)』(1950, 뉴욕 현대미술관), 『블루 폴즈』(1953, 뉴욕 개인 소장) 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잭슨 폴록 [Paul Jackson Pollock]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9032&cid=42636&categoryId=42636
<잭슨 폴록>
폴 잭슨 폴락(Paul Jackson Pollock, 1912년 1월 28일 ~ 1956년 8월 11일) 은 미국의 화가로서 추상 표현주의 운동 기수였다. 폴 잭슨 폴락의 부인은 추상화가 리 크래스너[Lee Krasner]다.
아메리카합중국 와이오밍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공부하였다. 1930년대부터 표현주의에서 초현실주의로 선회했다. 1947년 마루바닥에 편 화포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기법을 창안해 하루 아침에 유명해졌다. 이것은 작가의 제작 행위를 직접 화포에 하는 기록이라고 하여 '액션 페인팅'이라 불렀다. 대표작으로 〈가을의 리듬〉이 있다.
폴 잭슨 폴락은 1956년 8월 11일 자동차 사고 탓에 급사했고 그 사람의 생애를 다룬 영화로 〈폴록〉이 있으며, 그 사람의 생일인 2009년 1월 28일 구글 로고가 그 사람의 작품과 비슷한 그림으로 바뀐 적이 있다.
참고: 위키디피아
https://ko.wikipedia.org/wiki/%EC%9E%AD%EC%8A%A8_%ED%8F%B4%EB%A1%9D
<잭슨 폴록>
Paul Jackson Pollock
1912년 1월 28일 - 1956년 8월 11일
1. 개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 중 한사람. 무시당하며, 삼류라고 인식되던 미국 미술을 오늘날의 지위로 올리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1]
보통 '폴록'으로 더 많이 표기되지만 발음상으로는 '폴락'에 가깝다고 한다.
2. 생애
미국 중서부 와이오밍주의 농가에서 태어난 폴록은 가족과 함께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 등지로 옮겨 다녔다. 퇴학을 밥 먹듯 당했지만, 1930년에 뉴욕에 정착한 이후로는 미술 공부에 전념했다. 초기에는 표현주의적인 작품을 그렸지만 1930년대부터 추상화로 선회했다.
1947년 마루바닥에 편 화포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드리핑' 기법을 창안해 하루 아침에 유명해졌다. 잭슨 폴록은 바닥에 천을 놓고 막대기에 물감을 묻힌 뒤에 흩뿌리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렇게 완성된 그림은 어떤 형체는 보이지 않고 마치 실타래가 엉킨 듯한 물감자국만이 남았다. 한스 나무스가 이 방식으로 작업하는 폴록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후대에 '액션 페인팅'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폴록의 작품이 회화의 기본(평면성, 비재현성)을 제대로 드러내 보인다며 극찬했다. 그린버그가 좋아한 회화는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고 어떤 자연세계속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 그림이었는데,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딱 여기에 들어맞았던 것.
그 작업방식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들 크기가 굉장히 크다. 마침 고층빌딩이 많이 세워지면서 그 빈 벽에 걸 그림이 부족했던 미국 갑부들에게 폴록의 그림은 굉장히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2]
거칠고 파격적인 추상 회화를 통해 20세기 미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지만, 그에 비례해서 부담감이 컸다고 한다. 후기에는 자기 스스로 작업방식에 매너리즘을 느껴 다시 표현주의로 회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폴록은 알콜중독이었고, 44세의 젊은 나이에 애인과 친구들을 태우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3. 평가
현대미술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의 '액션페인팅'[3]은 흔히, 대중이 인식하는 현대미술(동시대미술)의 난해함을 비꼬거나 조롱하는 작품으로서 많이 활용된다. 현대에는 전혀 파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당시에 매우 파격적이였다는 것이다. 시대적으로 와닿게 언급하자면, 대표적인 작품인 'No. 31'의 제작년도는 1950년이다. 6.25 전쟁 발발년도 이기도하며, 대한민국이 광복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시기이다. 게다가 그는1912년 출생이다. 21세기도 아니고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작가라는 말이다. 그 당시 액션페인팅 시도는, 누드화의 등장 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당시 평단에서는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는 그림을 그린다며 잭슨에게 잭 더 드리퍼(Jack The Dripper)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발음이 비슷한 살인마 잭 더 리퍼처럼 지금까지의 미술을 죽여 버렸다는 의미에서 붙인 별명이기도 했다.
회화로서, '우연성'을 개입시켰으며, 새로운 형태의 회화라는 측면에서 당시에, 극찬을 받았다.
애초에, 모든 그림(및 예술작품들)에서 학교 수업시간에 배우듯 무조건 메시지를 찾으려 하면 안된다. 액션페인팅 말그대로 '액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잭슨 폴록이 그려낸 결과물보다, 그것을 흩뿌리며 그려낸 과정에서 더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과물과 물질만을 예술로 인정 받았던 시기에서, 제작의 과정과 의도 역시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며, 개념미술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가 받기도하며, 잭슨 폴록을 기점으로 미술의 시대를 나누는 학자도 존재한다.
참고: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E%AD%EC%8A%A8%20%ED%8F%B4%EB%A1%9D
<마크 로스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년 ~ 1970년)는 추상회화의 본질과 형상에 혁명을 일으킨 미국인 화가 세대에 속한다.[1] 45년에 걸친 마크 로스코의 활동 시기는 리얼리즘 시기(1924~1940), 초현실주의 시기(1940~1946), 과도기(1946~1949), 고전주의 시기(1949~1970) 넷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 두 시기에 로스코는 전원풍경화, 실내화, 도시풍경화, 정물화, 그리고 뉴욕의 지하철 그림들을 그렸는데, 이 중 마지막 주제는 이후의 작품들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2차 대전과 전쟁 직후에 그린 작품들은 상징적이며 그리스 신화나 기독교적 모티브에 기반을 둔 것들이다. 로스코는 순수추상회화로 옮겨가던 과도기 시절에 소위 ‘멀티폼’이란 것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안개가 낀 것처럼 몽롱한, 직사각형의 색면, 즉 유명한 고전주의 시기 작품으로 점차 발전해 나갔다.
작품 세계
마크 로스코는 1940년을 전후해 미국에서 일었던 급격한 화풍의 변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해외에서의 전쟁으로 인한 폐해와 혼란을 피해 뉴욕으로 온 마크 로스코와 동시대 화가들의 회화는 구상화에서 추상화로 이행한다.
1923년 뉴욕으로 온 뒤 전설적인 예술 학생 연맹에서 수학한 것을 제외하면 마크 로스코는 정식 미술 수업을 거의 받지 않았다. 마크 로스코에게는 화가 밀턴 에버리(Milton Avery)라는 중요한 스승이 있었으며, 에버리의 절제된 형상, 미묘한 색감은 젊은 로스코의 작업 방향에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젊은 시절 드라마에 가졌던 관심을 발전시켜 신화와 심리 분석서들을 닥치는 대로 탐독했고, 렘브란트의 그림, 모짜르트의 음악, 니체의 철학은 마크 로스코의 사상에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1940년대에 이르러 마크 로스코는 '추상 표현주의 화가'라고 알려져 있으면서 때로는 '뉴욕 학파'라고도 불리는 느슨하게 구성된 일군의 화가들과 함께 활동한다. 그러나 이들 화가들이 전부 뉴욕에 기반을 두고 활동한 것은 아니며, 또한 추상화에 대한 접근방식도 서로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 밝은 시각 효과를 내는 색면이 일깨우는 신체적 감각을 탐구했다. 마크 로스코는 추상 이미지가 "휴먼 드라마"의 근원적 속성을 직접 반영할 수 있고, 회화가 비극, 환희, 숭고함과 같은 영원한 주제들과도 때로는 맥을 같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초기: 1920년대 - 1930년
1920년에서 1930년대 시기동안 마크 로스코는 누드, 자화상, 인물이 있는 내부정경, 도시와 자연경관 등을 그린 수백 점의 그림을 종이와 캔버스에 남기고 있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형태의 고의적 변형과 물감의 엄격한 적용은 몹시 선망한 아프리카와 대양주 미술, 어린이 미술과 같은 몇몇 비서구 시각 전통이 공유한 특징들이다. 드로잉과 회화의 재료와 도구에 대한 초창기 실험적 시도는 흑연, 잉크, 투명/불투명 수채, 유채를 포함한 많은 소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마크 로스코의 초기 전시회에는 야외 풍경을 그린 ‘무제’(풍경화)와 같은 수채 풍경화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자연의 유기적 곡선 묘사는 재빨리 도시의 기하학적 구도로 대체된다. 동시에 형상은 갈수록 뒤틀려 나타나고, 이런 특징은 1930년대 말 그려진 두 작품 ‘거리 풍경’과 ‘지하철 환타지’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후자는 마크 로스코가 뉴욕 지하철을 인간 소외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탐구한 대표적 작품이다. 평면적이고 무표정하면서 지극히 연약한 인물들은 그물망 같은 답답한 지하세계에서 건축적 배경과 뒤섞인다.
과도기: 1940년대
자신의 예술이 인간조건의 비극성을 표현하기를 원했던 마크 로스코는 "이제 누구도 형상을 훼손하지 않고는 사용할 수 없는 때가 왔다"라고 말했다. 1940년 즈음 마크 로스코는 면 분할된 영역 속에 위치한 반복되는 형태와 심하게 분절된 인간 형상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 ‘무제’와 같은 일련의 회화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가 진행될수록 마크 로스코의 이미지는 더욱 상징성을 띠고, ‘근원’, ‘물속 드라마’처럼 신체적 변형을 그린 회화로 이행하면서 추상화에 더욱 근접한다. 이 그림들은 초현실주의에서 영감을 받아 종이와 캔버스를 이용해 그려진 많은 그림들의 일부분이다.
1947년은 바야흐로 마크 로스코의 회화에서 모든 구상적 이미지는 다 사라지고 대신 느슨하게 정의된 "다층 형상"이라 불리는 색면의 비객관적 구도가 등장한다. ‘작품 9번’이 대표하는 다층 형상의 시기는 1947년에서 1949년까지 지속되며, 이 시기 마크 로스코의 작품 세계는 가장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캔버스화의 방향과 모양, 그 위에 창조된 형태, 색조 범위는 구도상 절제되고 극도로 복잡한 색면을 특징으로 하는 마크 로스코 독특한 양식의 기초가 된다.
원숙기: 1950년 - 1970년
1950년경 마크 로스코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여 ‘단순한 표현 속의 복잡한 심정’이라는 그의 이상을 실현하였다. 이들 작품은 보통 1955년작 ‘무제’에서 나타나듯이 두개에서 네개의 직사각형이 큰 색면 위에 수직으로 배열되어 있는 구도를 보인다. 이런 형태 안에서 마크 로스코는 폭넓은 색채와 색조, 여러가지 양식적 관계를 활용해 극적이고 소박하며 시적이기도 한 다양한 분위기와 효과를 자아낸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1957년 ‘무제’에서 볼 수 있듯이 1950년대에 상당히 어두워졌다. 1958년 무렵에는 화려한 색상 대신 붉은색, 갈색, 고동색, 검은색 등 어두운 색을 선택하여 사용하였고, 특히 생애 마지막 10년동안 몰두했던 벽화작업에서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1968년 대동맥류가 발병한 후 마크 로스코는 주로 커다란 캔버스에 그리던 것을 그만두고 종이에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들 작품 중 상당수는 판넬이나 직물 위에 설치되어 틀이 없는 캔버스화처럼 보인다. 1969년작 ‘무제’는 마크 로스코가 생애 마지막에 그린 고동색 혹은 검은색과 회색의 색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그의 작품 구도는 기본적인 색채, 색조, 색면의 대치구도로 한층 집약된다. 하지만 선명한 붉은색으로 가득찬 1970년작 ‘무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 오로지 어두운 색채만이 그의 작품을 압도했던 것은 아니다.[3]
참고: 위키디피아
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D%81%AC_%EB%A1%9C%EC%8A%A4%EC%BD%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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