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헌 작가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작가노트>
나의 작품은 추억이 있는 풍경 작업이다.
나에게 추억이란,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이 남기는 흔적, 기억 향수와 같은 단어를 포괄한다.
이번 작품은 유럽을 여행하면서 느낀 인상, 서정적인 느낌, 흔적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하기 마련인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가치들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품에는 집과 바다, 들판의 풍경이 있고, 동시에 대담하게 분할된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은 색면이 전면을 차지하며, 구상과 추상이 공존하는 이중적인 특성이 드러난다.
나는 여행지에서 느낀 그곳의 냄새, 색, 온도 등을 화면에 담으려 했고 평화로운 그 순간의 행복감이 마음 깊은 곳에 찾아들면 그것을 색과 이미지로 구셩하려고 했다.
이와 같은 여행 체험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작업하는 고독한 그 순간은 온전한 나의 세계 나의 우주며 행복에 잠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컬러의 들판>
작가 송인헌의 작품 속 주요한 요소들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춰 다루고자 한다.
그녀의 회화에는 재료뿐만 아니라 특히나 색의 힘이 확고히 드러나 있다.
색이 커다란 형태 속에서 힘있게 화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주로 풍경이나 가끔 정물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생동감 넘치고, 강렬하고 풍부한 색들은
색의 존재감과 힘을 담고 있다.
과거 몇몇 작품들은 형태적인 측면에서 더욱 ‘고전적’이다.
구상적인 요소를 애써 없애지 않고도 추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점이 더욱 나의 관
심을 끈다.
작가가 사용하는 색감들은 지중해, 실재 혹은 가상의 공간들에 위치한 풍경들의 자연적인 색감
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작가는 색조에 있어서 굉장히 제한된 색채를 사용하는데 특히 적색, 주황색 혹은 청색 계열이다.
청색은 종종 굉장히 어둡게 나타나며 녹색과 황색도 그러하다.
거대한 단색이 눈길을 끄는데, 이 단색조의 화면들은 풍부한 색감의 명암과 농도 차이의 다양성
을 동시에 담고 있다.
작가는 산토리니 혹은 풍경의 빛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지만, 풍경의 특성을 사라지게한 눈부
신 빛의 강렬함으로 우리로 하여금 순수한 사유로 빠져들게 한다.
또한 송인헌의 작품은 루드비히 비트켄슈티인의 색채에 대한 이론들을 상기시킨다.
비겐슈타인의 저서 ‘색깔에 관하여’가 난해하고 책과 작품의 단편적인 특징을 연결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이 영국인 철학자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
색은 외양의 논리에 속하기 때문에 사실적인 색은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렘브란트가 어떻게 금색을 사용하지 않고 황금 투구를 그릴 수 있었는지에 대
해 궁금해 했다.
“렘브란트는 금색 물감이 있었지만, 황금 투구를 칠하기 위해 그 물감을 사용하지 않았다.” ‘색깔에 관하여’ 달리 말해 송인헌의 화폭에서 나타나는 청색의 깊이감, 적색의 힘, 인위성에 관계없이 그것들이 사실을 정확히 재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늘의 청색과 땅의 황색을 볼 수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몇몇 근작에서도 추상성이 더욱 두두러지지만 구상이 그 중요성을 잃은 것은 아니다.
사실 추상적인 부분과 구상적인 부분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조화로운 균형이 느껴진다.
그녀의 작품에는 서양의 형이상학과 같은 대림이 없고 보완성이 존재한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특성은 인간이나 동물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풍경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추상과 구상의 대리립이 없는 것처럼 생물의 부재는 회화에서 천착해온 작가의 고독을 보여주면
서도 작가와 소통하는 새로운 동료이자 고행을 함께하는 캔버스, 붓, 색들이 구 충만한을 보완한다.
이것은 철학자 질 들뢰즈를 연상시키는 개념적인 존재와 흡사하다.
게다가 생물들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를 풍부하게 하는 힘, 추상적인 형태들은 작가의 고
된 작업을 드러낸다.
풍경 그 자체가 인간들의 노고가 오롯이 담긴 결과물이라는 것 또한 우리에게 알려준다.
화폭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드넓은 단색조의 회화는 작가의 작업뿐만 아니라 땅을 일구고 경작하는 시골 농부들의 노고, 집
을 짓는 벽돌공의 수고, 도자기를 빚는 장인들의 노고 등을 담고 있다.
송인헌 작가는 대립하는 것들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듯하다.
대신 보완성에 대해 사유하기 위하여 서양의 형이상학, 자연과 문화, 추상과 구상, 자연스러운
것과 인공적인 것, 존재와 부재 등의 대립을 넘어서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다.
- 쟝 사를르 장봉 프랑스 미술평론가
송인헌 작가님은 단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졸업(박사), 목원대학교 미술교육과 전임강사 및 겸임교수를 역임 하셨어요~~~~^^
개인전은 31회(서울, 독일, 뉴욕, 북경), 인사 가나아트센터,팔레드 서울 초대전, 조선일보미술관, 흰물결 아트센터 기획 초대전, 선화랑 외 다수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셨어요~~~~^^
그룹 및 기획전은 260여회 하셨어요~~^^
그룹 및 기획전을 하신 전시 장소는
KIAF(코엑스), 마니프 국제아트페어,SOAF, 화랑미술제, 싱가프로 아트페어, 뉴욕 아트페어, 청담
미술제, 목원대 교수작품전, 홍콩 하이얏트 호텔 아트페어, 선화랑 개관 33주년 기념전, 한국의
자연 빛의 인상(파리, 시떼 데자르), 오늘의 여성미술전(양평군립미술관)외 다수의 곳에서 전시
를 하셨어요~~~~^^
심사 및 운영 경력은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충남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신사임당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경기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공무원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행주미술대전 운영위원 역임을 하셨어요~~~~^^
수상경력은
제22회 석주미술상 수상, 제4회 서울모던아트쇼 대상, 대전시 미술대전 특선 3회, 대한민국 연하
우편엽서 작가 선정(정보통신부)이 되셨어요~~~~^^
아래 부터는 송인헌 작가님 작품들이에요~~~~~^^
Landscape with memories | 100호 | oil on canvas
Landscape with memories | 50호 | oil on canvas
Landscape with memories | 100호 | oil on canvas
Landscape with memories | 100호 | oil on canvas
Landscape with memories | 400호 | oil on canvas
Landscape with memories | 50호 | oil on canvas
Landscape with memories | 100호 | oil on canvas
Landscape with memories | 200호 | oil on canvas
Landscape with memories | 80호 | oil on canvas
Landscape with memories | 200호 | oil on canvas
Landscape with memories | 200호 | oil on canvas
Landscape with memories | 200호 | oil on canvas
Landscape with memories | 200호 | oil on canvas
Landscape with memories | 20호 | oil on canvas
<내가 본 전시회 느낌>
송인헌 작가님의 작품들을 처음 보았을 때 밝고 화려한 느낌의 몬드리안의 추상작품을 보는 듯한 작품들이였어요~~~~^^
송인헌 작가님의 작품들은 화려하고 생동감 있는 에너지를 관람객으로 보내주고 있는 느낌이였어요~~~~^^
개인적으로 붉은색 계열을 좋아해서, 빨강과 노랑 등의 색상을 사용한 작품들 앞에서 한 참 서있으면서 작품을 느껴 보았어요~~~^^
송인헌작가님의 작품을 보게 되어서 행운이였고 다음 전시회가 또 기대가 되네요.~~~~^^
작품 사진들은 작가 및 관련 관계자의 촬영 허락으로 제작 하였습니다.
이 작품 사진들 안의 그림들은 작가 및 관련 관계자의 허락 없이 무단 사용을 할 수 없습니다.
아래는 인사아트갤러리 위치에요~~~~^^
아래는 송인헌 작가님의 작품을 보고 추상화에 대해서 찾아 보았어요~~~~^^
추상화[ Abstract Painting, 抽象畵 ]
●정의
가시적 형상을 모방해서 재현하는 방식을 벗어나 점, 선, 면, 색채의 순수조형 요소로 구성한 그림.
●개설
한국의 추상화는 1930년대 중반 경 일본에서 유학하던 몇몇 젊은 미술학도들에 의해 시작된 이래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전후 1세대 청년 작가들이 주도한 앵포르멜 미술에 이르러 현대미술의 주류가 되었다. 전후의 혼란스러운 사회와 기성 화단에 저항하며 집단적 미술운동의 성격을 뗬던 앵포르멜(Informel) 미술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추진력을 상실하여 경화현상을 보였고, 해프닝(Happening), 개념미술(Conceptual Art) 등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세대의 도전에 직면하였다. 1970년대 중반 경에 시작된 단색조 회화에 의해 재차 추상화의 시대를 맞이하기까지 오리진(Origin) 그룹의 몇몇 화가에 의해 기하학적 추상화가 한국 추상화의 맥을 이어갔다. 단색조의 추상화는 서구 모더니즘 미술 이론의 평면성과 균질성을 한국의 백색(白色), 동양의 자연관 및 정신과 결합시켜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일컬어지면서 1980년대까지 화단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민중미술 및 신형상회화의 도전과 1990년대에 도래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기류에 의해 추상화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갔다.
내용
한국에서의 추상미술은 1930년대 중반경 일본에 체류하던 김환기(金煥基), 유영국(劉永國), 이규상(李揆祥) 등 극소수의 청년 미술학도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김환기는 몬드리안(Piet Mondrian)류의 구성에 서정성을 가미한 추상 작품을 하였고 유영국은 판 부조의 순수기하학적 도형을, 이규상은 기호적 구성작업을 전개하였다. 이들 한국 추상미술 1세대의 해방 이전 활동은 일본의 전위 단체전인 자유미술가협회전(自由美術家協會展), 미술문화협회전(美術文化協會展), 이과전(二科展)의 구실회(九室會) 등을 통해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국내 활동과 영향력은 미미했다.
일제강점기에 전개된 추상미술에 이어서 2기 추상미술은 전후 1세대 화가들에 의해 전개되었다. 피식민의 역사와 전쟁을 겪은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규범과 가치, 특히 국전을 장악한 기성 미술계에 도전하여 프랑스의 앵포르멜과 미국의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으로부터 비정형의 격정적 표현주의를 흡수하였다. ‘앵포르멜’ 혹은 ‘격렬한 추상표현주의 미술’이라고 불리는 전쟁 직후의 추상미술 조류는 1958년 제2회 현대미술가협회전(現代美術家協會展)을 시작으로 196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大韓民國美術展覽會)를 장악할 정도로 유행하였다. 1960년대 말경에 이르러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직면하여 종언을 고하고, 오리진 그룹만이 기하학적 추상으로 추상화의 역사를 변화, 지속시켰다.
1975년에 일본 도쿄화랑(東京畵廊)에서 기획한 ‘다섯 가지 흰색전’을 시작으로 1980년대까지 화단을 풍미했던 단색화는 화면의 평면성과 균질성이라는 모더니즘 회화의 이론을 수용하는 동시에 백색의 비물질성, 정신성에 집중하여 민족성을 표방하였다. 일루전의 반영으로서의 회화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실재인 회화로서 미니멀리즘(Minimalism) 미술을 표방하면서도 민족적 감성에 접근함으로써 단색화는 ‘한국적 미니멀리즘’으로 평가받았다.
계급의식과 소통을 주장하는 1980년대 민중미술 계열의 도전, 유럽 신형상회화의 유입, 199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적 기류의 수용에 따라 ‘집단 개성’이라 불릴 정도로 미술계를 단일화시킨 단색조 추상화의 기세는 소진되었고, 다시 구상의 복권이 이루어지는 한편 네오 제오(neo-geo), 포스트 컨셉츄얼리즘(Post-Conceptualism) 등의 추상형식의 미술이 전개되었다. 21세기 초의 추상미술은 열린 추상, 포스트모던적 추상, 후기 추상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모더니즘의 비판적 성찰을 위한 개념작업으로서의 추상을 시도한다.
의의와 평가
1930년대에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에 참여하는 활동으로 시작된 한국의 추상화는 식민 상황 속에서도 추상미술의 국제성과 보편성을 수용하였다. 이후 형상미술의 복권에 의해 부침을 계속하면서도 국제성과 한국성의 공존을 위한 모색을 시도하여 ‘한국적 모더니즘’이라는 고유의 추상화를 창안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추상화 [Abstract Painting, 抽象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59103&cid=46660&categoryId=46660
1.추상화
미술에서 사물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자연적,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점, 선, 면, 색채 등의 표현을 목표로 하는 그림, 혹은 그 기법. 보통 부드러운 선으로 이루어진 것은 뜨거운 추상, 직선으로 간단명료하게 구성된 것은 차가운 추상이라고 부른다. 앞의 예로는 칸딘스키가 있고, 뒤의 예로는 몬드리안이 있다.
원래 목적은 현실의 정치, 이념, 경제논리 등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미적인 것만을 표현하자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그 결과 선전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인물 묘사를 배제하게 되었다. 나아가 클레멘트 그린버그 같은 이론가는 회화는 회화다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회화 이외의 요소는 전부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무슨 의미냐면, 서사는 문학에서 온 것이니 회화에서 스토리도 배제해야 하고[1], 입체감은 조각에서 온 것이니 음영같은 것도 넣지 말아야 하며, 공간감은 건축에서 온 것이니 원근법도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자 점, 선, 면, 색채 같은 조형요소 그 자체의 아름다움만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물 묘사마저 거부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어찌보면 근본주의?
이는 당시 모더니즘을 추종하던 다른 분야의 예술가, 건축가, 이론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같은 건축가나 디자이너 모홀리 나기가 대표적. 이들은 사물에는 핵심구조가 있으며, 이 구조를 추려내는 것이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추상화한 결과물은 누구나 좋아하고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 때문인지 모더니즘은 회화, 디자인, 건축 할 것 없이 굉장히 단순한 구조를 강조하게 되었다. less is more
하지만 이렇게 모든 대상을 미분화미분화시키고 단순화시켜 버리는 방식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는데, 오래 보면 지루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미술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억누르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후대 예술가들은 이에 반발하는 작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추상이 탐구하고 개발한 각종 이론과 기법들은 오늘날 디자인 분야에서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당장 미스 반 데어 로에나 칸딘스키 등이 참여했던 디자인 학교가 바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인 바우하우스다. 애플사에서 강조하는 단순한 미니멀리즘 디자인도 어찌보면 이 영향권 하에 있는 셈.
https://namu.wiki/w/%EC%B6%94%EC%83%81%ED%99%94
<추상화 작가들>
● 차가운 추상 -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a)n]
네덜란드의 화가, 추상회화의 선구자. 자연주의적 수법으로 풍경, 정물 등을 그렸으나, 마티스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후부터 추상화를 그렸다. 추상화가들과 ‘데 스틸’그룹을 결성하였고, 신조형주의인 네오 플라스티시즘을 창도하였으며 20세기 조형이론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출생 - 사망 :1872. 3. 7. ~ 1944. 2. 1.
출생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부근의 아메르스 포르트
직업 : 화가
네덜란드의 화가로, 추상회화의 선구자. 암스테르담 부근의 아메르스 포르트에서 출생, 뉴욕에서 사망. 암스테르담의 미술아카데미에서 배움. 경건한 칼빈주의자인 부친의 영향에 의해 20대 후반부터 신지학(神智學)에 몰입, 후년의 회화에서의 절대성 추구의 연원을 이룬다.
처음엔 자연주의적 수법으로 풍경, 정물 등을 그렸으나, 1908년 마티스의 작품에서 순수색에 감명받아 1910년 파리로 나아가 큐비즘으로 전신, 『나무』의 연작등을 통해서 추상화의 노력을 시작한다. 1914년 귀국해서 1917년 두스브르흐 등 네덜란드의 추상화가들과 「데 스틸」그룹을 결성, 본격적으로 순수추상운동을 전개한다(1925년 그룹 이탈). 1919년 파리로 돌아가 다음 해 파리에서 신조형주의(네오 플라스티시즘)를 창도했다. 제 2차대전의 위기를 느끼고 1938년 런던에 이주하였고, 1940년 뉴욕으로 건너가 만년의 충실한 작품활동을 전개했다. 일체의 구상성(具像性)을 버리고, 수직선과 수평선에 구조의 원리를 두어 원색의 정방형, 장방형의 배치에 의해, 지고(至高)의 질서와 균형을 구했다. 도시와 건조물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그의 사상은 20세기의 조형이론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만년의 대표작에는 『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2~1943, 뉴욕현대미술관)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a)n]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6427&cid=42636&categoryId=42636
● 뜨거운 추상 -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러시아 태생의 화가. 추상미술의 아버지이자 청기사파의 창시자로 사실적인 형체를 버리고 순수 추상화의 탄생이라는 미술사의 혁명을 이루어냈다. 미술의 정신적인 가치와 색채에 대한 탐구로 20세기 가장 중요한 예술이론가 중 한 사람으로 불리며, 바우하우스의 교수로도 재직했다.
출생-사망 : 1866.12.16 ~ 1944.12.13
국적 : 러시아
활동분야 :회화
출생지 : 러시아 모스크바
주요저서 :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On the Spiritual in Art》(1911), 《점 ·선 ·면 Point and Line to Plane》(1926)
주요작품 :
《즉흥 26 Improvisation 26》(1912), 《교회가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Church》(1913), 《구성 218 Composition No. 218》(1919), 《구성 8 Composition VIII》(1923), 《하늘색 Sky Blue》(1940)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186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1886년 모스크바 대학교에 들어가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성공적인 법학자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그는 1895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그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듬해인 1896년 독일로 건너가 아즈베 미술학교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1900년에 뮌헨아카데미에서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에게 사사하며 훗날 바우하우스에서 함께 일하게 되는 동료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를 만났다.
칸딘스키는 1901년 팔랑크스 전시협회 및 미술학교를 창립하고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가브리엘레 뮌터(Gabriele Münter)를 만나 이후 몇 년 동안 그녀와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며 함께 작품 활동을 했다. 1908년 무르나우로 거처를 옮긴 칸딘스키는 그곳에서 일련의 풍경화를 제작했다. 초기에 그는 화려한 색채의 풍경화나 러시아 민속화에서 영감을 얻은 주제들을 그렸으나, 점차 구상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대상과 상관없이 형태와 색채, 선들 속에서 표현 가능성의 확장을 발견했다. 그리고 음악과 철학, 근대미술과 추상작업에 대한 사상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1909년 그는 캔버스를 매우 자유로운 필치의 점과 색띠로 뒤덮음으로써 추상을 탐험했다.
칸딘스키는 1911년 뮌헨에서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와 함께 아방가르드 모임인 ‘청기사파’를 결성했다. 그의 논문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On the Spiritual in Art》는 청기사파 그룹 탄생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2년 동안 이 그룹은 독일 표현주의 미술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칸딘스키는 독일을 떠나 모스크바로 갔다. 모스크바에서 그는 민족 계몽을 위한 위원회의 회화분과에서 활동하는 한편, 모스크바 아트워크숍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구성주의에 대해 연구했다.
1922년 칸딘스키는 바우하우스에서 회화와 미술이론을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독일로 돌아왔다. 러시아 구성주의의 영향으로 그의 작품은 수학적으로 제한된 엄격한 형태가 지배하게 되었다. 가장 기초적인 형태인 원은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감정적이고 서정적인 색채 사용을 멈춘 적은 없었다. 그는 1933년 나치스의 탄압으로 바우하우스가 강제로 폐쇄하자 파리로 망명을 떠났고 그곳에서 남은 생을 보냈다. 1937년 나치스가 퇴폐예술가라고 지적하여 작품이 몰수당하기도 했다. 그는 1944년 프랑스 뇌이쉬르센에서 78년의 생을 마감했다.
칸딘스키는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로서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에서 이탈, 선명한 색채로써 음악적이고 다이내믹한 추상표현을 이루어냈다. 그는 색채와 선, 면 등 순수한 조형요소만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으며, 형태와 색채가 사물의 겉모습을 그려내기보다 작가의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시각에서 그는 추상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을 음악에 비유해 설명했다. “색채는 건반, 눈은 공이, 영혼은 현이 있는 피아노이다. 예술가는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건반 하나하나를 누르는 손이다.”
그가 남긴 주요 작품에는 《즉흥 26 Improvisation 26》(1912), 《교회가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Church》(1913), 《구성 218 Composition No. 218》(1919), 《구성 8 Composition VIII》(1923), 《부드러운 상승 Gentle Ascent》(1934), 《하늘색 Sky Blue》(1940) 등이 있으며, 또 추상미술 이론가로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On the Spiritual in Art》(1911), 《점 ·선 ·면 Point and Line to Plane》(1926) 등의 저술도 남겼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49206&cid=40942&categoryId=34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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