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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선 작가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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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선 작가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작가노트>

 

작품 속에서 여러 가지 방식의 쌓여짐에 관한 형상화를 시도하였다.

 

수평적 레이어를 보여주는 종과 수직적 구조의 횡의로 쌓여지는 레이어의 표현은 관찰자로 하여금 다양하게 접근토록 할 수 있다.

 

작가가 바라 본 지층은 지질학의 측면에서만 해석 되는 것도 아니며, 이 경이로운 자연 현상을 조형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여러 가지의 해석을 가능케 하는 시도로써 바라 볼 수 있다.

 

 

 

<전시서문>

 

그동안 안유선의 작품세계에도 조용한 변화가 있었다.

 

구체적인 동식물의 이미지에서 일상적인 대상을 거쳐 서서히 추상적 조형의 세계로 변화되어 가면서, 전체적으로는 보다 함축적이면서 상징적인 화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작품세계의 분명한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전히 등장하는 나뭇잎의 형상을 이용한 추상적 구성의 작품들은 평이한 조형세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최근에 그린 독특한 이미지의 부정형한 색명능 개성적이고 조형적 깊이감이 있으면서 새롭다.

 

평이한 나뭇잎 구성의 작품들 보다 한 차원 더 긴장감 있는 조형적 에너지로 충만한 작품이다. 

 

물론 여기에도 식물의 이미지는 남아 있지만 그것은 종래에 그가 해왔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시각적 에너지와 의미를 지니고 다가온다.

 

어두운 색면의 구체화 되지않은 모호한 부정형한 이미지는 감상자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좋형적 긴장감을 지니고 있다.

 

어떤 것은 미지의 숲의 원시적 탄생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는 지각의 뒤틀림과 새로운 대륙의 융기를 연상계 하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연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감상자를 주목케 하는 것은 이러한 평태가 지는 사고를 유도하는 강렬한 저형의 힘이다.

 

안유선이 새롭게 그린 독특한 이미지의 부정형한 새겸ㄴ들은 생명의 근원적 에너지를 지닌 의미있는 시각적 덩어리로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독특한 시각적 덩어리들은 다양한 이미지를 생성시키고 변화시키는 풍부한 형상의 모태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유선은 끊임없이 의미있는 조형의 가능성을 찾아 헤맨 끝에 비로소 형상의 모태적 요소를 간직한 디오니소스적 이미지 덩어리의 한 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그가 발견한 독특한 이미지의 덩어리는 개성적인 미의 울림을 보여준다.

 

그것은 안유선이 한사람의 판화가로서 자신의 독자적 시각을 지니고 걸어가기 시작했다는 귀중한 증거이기도 하다.

 

- 2017년 1월 17일 서북서실에서 평론가 임두빈 교수 평론 중

 

 

 

<지층 형상화 연구전>

 

안유선 작가는 작품 속에서 여러 가지 방식의 쌓여짐에 관한 형상화를 시도하였다.

 

수평적 레이어를 보여주는 종과 수직적 구조의 횡으로 쌓여지는 레이어의 표현은 관찰자로 하여금 다양하게 접근토록 할 수 있다.

 

작가가 바라 본 지층은 지질학의 측면에서만 해석 되는 것도 아니며, 이 경이로운 자연현상을 조형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여러 가지의 해석을 가능케 하는 시도로써 바라 볼 수 있다.

 

- 안유선 박사학위논문 '범생명적 초월주의를 통한 판화연구' 중

 

 

 

 

 

안유선 작가님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 박사를 졸업 하셨어요~~~^^

 

개인전은 갤러리 인사아트 초대개인전 지층 형상화 연구전  5회러시아 노시빌스크 국제판화 트리엔날레 지명초대전 외 단체전 40여회,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 수상 외 공모전 11회 입상을 하셨어요~~~^^

 

현재는 융합예술가협동조합 호기심연구소 이사장님을 하고 계셨어요~~~^^

 

 

 

 

 

아래 부터는 안유선 작가님 작품들이에요~~~~^^

 

The Stratum - 26 | 65 x 50cm | mixed media | 2019

 

 

 

 

 

The Stratum - 6 | 78 x 107cm | Relief | 2016

 

 

 

 

 

The Stratum - 7 | 78.5 x 107cm | mixed media | 2016

 

 

 

 

 

The Stratum - 8 | 78.5 x 107cm | Woodcut | 2016

 

 

 

 

 

The Stratum - 9 | 78.5 x 107cm | Woodcut | 2016

 

 

 

 

 

The Stratum - 15 | 107 x 157cm | Woodcut | 2017

 

 

 

 

 

 

 

Cosmos - 1,2,3,4,5,6 | 65 x 50cm | mixed media | 2018

 

 

 

 

 

 

<내가 본 전시회 느낌>

 

안유선 작가님의 작품들을 처음 보았을 때 손으로 그린 추상회화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판화라고 알고 깜짝 놀랐어요.

 

안유선 작가님 작품들의 모티브는 여러 가지 방식의 쌓여짐에 관한 형상화를 시도하였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조금은 어려운 소재인 것 같았지만 딱히 어떤 소재를 그렸다고 생각해서 구경하기 보다는 그냥 작품 그대로를 받아들이니 작품들이 편안하고 재미있께 느껴졌어요~~~^^

 

안유선 작가님 작품의 전체적인 색채들은 채도가 낮은 파란색, 녹색을 주로 사용하셔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안유선 작가님의 작품을 보게 되어서 행운이였고 다음 전시회가 또 기대가 되네요.

 

 

 

 

 

이 작품 사진들은 작가의 촬영 허락으로 제작 하였습니다.  
이 작품 사진들 안의 그림들은 작가의 허락 없이 무단 사용을 할 수 없습니다. 

This picture was filmed under the artist’s agreement.  
The pictures  in it may not be used without the artist’s permission.

 

 

 

 

 

아래는 갤러리인사아트 위치에요~~~~^^

 

 

 

 

 

 

 

아래는 안유선 작가님이 작업하시는 판화를 주제로 찾아 보았어요~~~~^^

 

 

판화[engraving , 版畵 ]

 

나무 ·금속 ·돌 등의 면에 형상을 그려 판을 만든 다음, 잉크나 물감 등을 칠하여 종이나 천 등에 인쇄하는 회화의 장르.

판화는 조각에 있어서 소형의 브론즈와 마찬가지로 유명한 예술작품의 복제수단으로널리 보급되어 실제로 작품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복제의 예술이며기술이다. 기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적 필요에서 불경과 성서의 이야기를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삽도(揷圖)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물론활자도 유효한 수단이었으나 문맹률이 높았던 당시의 민중에게 호소하는 데는 도상이문자보다도 한층 유효한 수단이었으며 이런 유의 판화에는 예술적으로 뛰어난 것도있으나, 대개 문화사적 기록이나 자료로서 가치 있는 것이 많다.

이러한 순예술적 목적 이외의 이의적(二義的) ·종속적인 복제성 때문에 판화 일반을회화 등의 1점 생산의 오리지널한 것에 대하여 예술성에서 다소 소극적 평가가 생긴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근대 ·현대에 이르러서는 판화개념이 달라졌다. 사진의 발명으로복제수단으로서 기능을 다하고, 판화나 회화가 기계적인 사실성 추구라는 점에서는사진에는 미칠 수 없음을 깨닫고 새로운 국면을 연 것이다. 즉 휘슬러 ·고갱 ·툴루즈로트레크 ·보나르 ·뭉크 등 19세기 말에 활약한 화가들의 목판화나석판화는 삽화적 ·설명적인 성격이 강했던 종래의 판화의 틀을 대담히 타파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칸딘스키 ·놀데 ·키르히너 등 독일의 표현주의 작가들은목판화에서 새로운 표현가능성을 찾았으며, 초기의 피카소 ·브라크 ·비용 등도큐비즘적인 시점을 그대로 판화의 세계에 도입함으로써오리지널 판화의 위치는확고한 것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판화 [engraving, 版畵]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57215&cid=40942&categoryId=33068

 

 

 

 

판화[ 版畵 ]

 

● 정의

판에 새겨서 찍은 그림. 판화란 원래 회화의 취약점인 일회성을 극복하고 다량 복제를 하여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시작된 분야이다. 이것은 주로 민간을 대상으로 교화하는 목적에 활용된다.

 

● 내용

조선시대 이전의 전통 판화는 책 앞에 대표적인 장면을 그린 권수 판화(卷首版畫), 책 내용 사이에 삽입되어 내용을 도해한 삽도 판화(揷圖版畫), 그림의 복제를 위하여 별도로 제작된 복제 판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전통 판화는 오늘날 인쇄의 역할을 대신하였고 복제 판화를 제외하고는 설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판화 제체의 예술적 특성을 살려 창작한 작품은 서양 판화가 수용된 20세기에 들어서서 나타났다.

전통 판화의 재료로는 목판화가 주류를 이루었고, 간혹 동판화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동판화는 오목형의 에칭 기법과는 다르며, 마치 목활자가 마모가 심하여 동활자로 바뀌었듯이 목판화와 같은 볼록형의 판 모양에 판의 재료를 나무 대신 내구성이 강한 동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석판화(石版畫)를 필두로 실크스크린·드라이포인트 등 근대적인 판화 기법이 대거 수용되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전통 판화의 기법은 판에 먹을 묻혀서 찍는 단색 판화가 대부분이다. 채색 판화로는 단색 판화에 색채를 칠하는 가채 판화(加彩版畫)와 여러 색으로 찍은 다색 판화가 있다. 일본이나 중국에 비하여 채색 판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못하였다.

판화는 화가가 밑그림을 그리고 각수(刻手)가 이를 새기기 때문에 그 예술성은 화가의 화풍과 각수의 표현력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 예민한 붓의 묘미를 날카롭고 거친 조각도로 표현한 것이 판화이기에 필법에 가깝게 표현하느냐, 아니면 아예 각법의 장점을 살려서 표현하느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판화 양식을 파악하는 관건이 된다.

대개 시대, 지역 그리고 수요 계층에 따라 각기 다른 취향이 나타난다. 서울이나 상류 계층 수요의 판화는 비교적 필법이 강하고, 지방이나 하류 계층 수요의 판화는 각법이 강하다. 그러면서도 필법의 재현은 그 나름대로 기술적으로 더욱 정밀해지고, 각법은 각법 대로 독특한 표현 영역을 확보하게 되는 시대적 추이를 보였다.

그리고 불교 판화와 유교 판화는 대개 교화의 수단으로 제작되어 같은 도상을 번각(飜刻) 또는 복각(復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예를 들어삼강행실도 三綱行實圖는 중앙에서 제작하여 각 지방에 몇 부를 나누어 주면 각 지방에서는 다시 이를 번각하여 일반백성에게 배포하는 체제를 갖추었다. 때문에 같은 시기에 제작된 삼강행실도라 하더라도 번각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또한 이 삼강행실도는 세종판(1434)을 시작으로 성종판(1490선조판(1579년?영조판(1726년?) 등 조선시대 내내 복각하여 같은 도상 속에서도 시대적인 차이를 반영하기도 한다. 따라서 삼강행실도라 하더라도 어느 시대, 어느 지방의 판본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그 판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사항이라 할 수 있다.

 

(1) 고려시대

 

우리 나라 판화의 역사는 고려시대 경판(經板)의 변상도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판화는 인쇄술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신라시대에 이미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751년 경)과 같은 세계 최고의 목판경이 제작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시대부터 판화가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당시의 판화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고려시대에는 사경(寫經)을 정성껏 제작하여 공덕을 쌓는 일이 성행하였다. 사경은 한 자 한 자 예불을 드리는 정성으로 경을 베끼고 당시로서는 비싼 금분이나 은분을 사용해야 되기 때문에, 그 수요는 일부 왕족이나 귀족 계층에 한정되었다. 그리하여 급증하는 수요에 부응하고 보다 값싼 비용으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목판경의 등장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 목판경은 사경의 보급판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전하는 가장 오래된 판화는 1007년에 개성의 총지사(摠持寺)에서 제작한보협인다라니경 寶篋印陀羅尼經≫이다. 이 변상도는 세로 5.4, 가로 10㎝의 소형 판화이다. 작은 화면인 탓인지 간략한 표현으로 일관하고, 다원적(多元的) 구성 방식에 의하여 다른 시간대에 발생한 내용을 한 배경 속에 아무런 구획이 없이 구성하였다. 이것은 중국의 오월판(吳越版, 975)을 본떠서 제작하였으며, 오월판에 비하여 약간 정세한 점이 다르다.

고려시대 판화의 핵심은 대장경 판화이다. 고려의 대장경은 1087년에 완성한 초조본(初彫本) 1251년에 완성한 재조본(再彫本)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초조본 대장경 판화로는 성암고서박물관과 일본 난센사(南禪寺)에 소장되어 있는어제비장전 御製秘藏詮이 있다.

이 가운데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권6의 변상도는 승려들이 거대하고 험난한 산들을 넘어서 고승(高僧)을 찾아가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송대(宋代)의 범관(范寬)과 동원(董源) 등의 영향이 엿보이는 거대한 산수 표현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송판(宋版) 대장경을 모본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것에 비하여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고려시대 불교 판화는 표현 방식에 있어서 다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대방광불화엄경제36권변상주 大方廣佛華嚴經第三十六卷變相周>(13·14세기, 趙炳舜 소장)과 같이 밑그림의 필선을 비교적 충실히 재현한 유려한 표현 방식이다. 이 작품에는 사경과 같은 선묘(線描 : 선으로만 그림)의 장엄이 그대로 살아 있다. 단지 왼쪽의 산만 굵은 각선으로 묘사되었다.

둘째는 해인사 소장의 고려판본과 같이 칼 맛을 살린 각이 진 표현 방식이다. 이 유형의 경판들은 거의 사찰판본으로 관판본과는 달리 거칠고 힘찬 표현이 주조를 이룬다. 해인사고려판본 가운데 <대방광불화엄경권제18변상주 大方廣佛華嚴經卷第十八變相周>(12·13세기)는 변상도 자체의 화려한 장엄의 세계를 역동성이 넘치는 각법으로 표출한 작품으로, 단연 고려시대의 대표작이라 하겠다.

이처럼 굵고 강렬한 각선을 대담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조선시대에도 계승되면서 우리 나라 판화의 중요한 특성으로 자리 잡게 된다. 호암미술관 소장 <소자본묘법연화경권제1∼7변상 小字本妙法蓮花經卷第一七變相>(1286)은 들고 다니게 만든 작은 경으로 각법이 거칠다. 이 변상도는 설법 장면만을 배치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사경과는 달리 배경을 장식하는 선묘나 꽃비를 생략하여 여백의 미를 살린 특색을 보인다.

이밖에 고려시대의 판화로금강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蜜經≫(1357,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부모은중경 父母恩重經≫(1378, 趙明基 소장) 등이 있다.

 

(2)조선시대

조선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전통을 따른 불교 판화가 지속되면서, 새로운 형식과 양식이 서서히 나타났다. 조선시대에는묘법연화경부모은중경이 가장 많이 제작되었고, 그밖에금강경≫·≪대방광불화엄경≫·≪아미타경≫·≪관무량수경≫·≪지장보살본원경등 여러 경전이 간행되었다. 특히부모은중경이 인기를 끈 이유는 이 경전의 핵심내용인 효가 유교국가의 덕목과 상응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상원사목조문수동자좌상복장전적(上院寺木彫文殊童子坐像腹藏典籍)으로 나온 <묘법연화경권제1∼7변상>(1404)은 고려의 전통을 충실하게 따른 판화이다. 도상은 고려판과 거의 같지만 양식에 있어서 다소 각선의 긴장감이 이완된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곧 새 시대에 걸맞는 새 형식이 정립된다.

1405년에 제작된 <묘법연화경권제5∼7변상>(이양재 소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변상도에서는 석가모니의 설법 장면만 그려지는데, 설법을 듣는 권속들이 대폭 증가하면서 빈틈없이 화면을 꽉 채우는 형식을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화엄경 및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등 다른 종류의 경전에도 영향을 미쳐 조선시대 불교 판화의 한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판화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온 것은 역시 유교 판화의 출현이다. 유교 판화는 고려시대 불교 판화의 일색에서 천문·지리·병가·의궤·예술·역학·초상 등 용도가 다양해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유교 판화의 효시는 1434년에 간행된삼강행실도이다. 이 책에 실린 판화는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하는 조선시대의 특색을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진주 사람 김화(金禾)가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백성들에게 삼강의 덕목을 교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뭇 백성이 그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각 항목마다 판화를 실었다. 이 판화는 그 설화적 구성이나 각법에 있어서 고려시대 이후의 불교 판화의 전통에 힘입은 바가 크다. 불화에서처럼 다원적 장면이 지그재그의 긴장감 있는 구도로 조합되었다.

() 공간과 철() 공간, 곡선과 직선, 밀집과 여백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절묘한 공간감을 창출한 점이 돋보인다. 인물 형상은 타원형의 유려한 곡선으로 단아하게 나타내었다. 이는 고려 말 조선 초 불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 판화의 밑그림을 안견(安堅)을 비롯한 궁정의 화원들이 그렸다.

≪삼강행실도≫의 간행을 계기로 조선시대에는속삼강행실도 續三綱行實圖≫(1515)·≪이륜행실도 二倫行實圖≫(1518)·≪동국신속삼강행실도 東國新續三綱行實圖≫(1616)·≪오륜행실도 五倫行實圖≫(1797) 등 행실도류 판화가 계속 제작되었다. 이들 행실도는 당대의 제일가는 화원들과 각수들이 제작한 우수한 작품이다. 이들 판화가 조선시대 유교 판화의 중추를 이루었다.

또한 17세기에는 일본에 전해져삼강행실도를 복각한화각삼강행실도 和刻三綱行實圖가 제작되어 일본 판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조선 중기에 있어서 판화의 백미는 단연 1536년에 제작된 소요산본목련경 目連經이다. 이 작품에서는 각법 위주의 표현 방식이 지배하면서 사실적인 묘사는 약화되고 표현성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흑백의 대비가 강하고 추상적이라 할 만큼 형상을 선으로 잘게 분할하고 거친 각법의 묘미를 한껏 살렸다. 이 판화는 전혀 사실적인 미감과는 거리가 멀고 아무런 격식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분방한 표현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표현주의적 경향은 징광사본(澄光寺本) ≪부모은중경≫(152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장)·≪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6<형제급난지도 兄弟急亂之圖>(1652) 16·17세기 판화에 공통되는 현상이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임진왜란 직후 인심을 수습하는 방안으로 그 전쟁에 희생된 충신과 열녀를 비롯한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그런데 전쟁 직후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급하게 만든 탓인지 표현이 세련되지 못하고 기하학적인 경향이 엿보인다.

또한 <형제급난지도>는 준법이 독특한데, 외곽선을 굵고 구불한 선으로 치고 그 안에는 가는 선으로 마치 수석의 문양처럼 부정형으로 처리하였다. 이처럼 각법의 표현성이 강한 양식은 고려시대 화엄사 고려판본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주로 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해 온 것이다. 조선 중기에는 전면적으로 성행하게 된다.

조선 후기에는 조선 중기의 표현주의적 화풍에서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변화하였다. ≪정충록 精忠錄≫(1769)과 같은 영조조의 작품에서는 각법이 강한 산수의 배경과 유려한 필법을 표현해 낸 인물의 묘사가 조합되어 있다. 이것은 각법 특유의 표현에서 필법적인 표현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현상이다. 정조조에는 정교한 기술에 힘입어 당시 화원들 사이에 유행한 김홍도화풍의 사실주의적 화풍이 득세하였다.

특히 사도세자에 대한 효성을 명분으로 시작한 화성(華城)의 건설 과정과 관련하여 용주사본(龍珠寺本) ≪부모은중경≫(1790), ≪원행을묘정리의궤 園幸乙卯整理儀軌≫(1797), ≪오륜행실도≫(1797) 등 일련의 판화가 제작되었다.

≪부모은중경≫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많이 제작된 경전 중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의 형식이 다른 경판화와는 달리 조선 전반기에도 큰 변화가 없다가 이 용주사본에 와서 새롭게 달라진 것이다. 이 경전 가운데 <여래정례 如來頂禮>를 보면, 김홍도의 <씨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연상케 한다. 원형 구도에다 주위의 권속들이 대폭 늘어났다.

경전의 내용에 따르면 오체투지(五體投地)하여야 하지만 고려시대본에 석가모니가 뼈 무더기에 목례만 하는 정도로 그쳤다. 그런데 이 판화에서는 실제 오체투지하는 장면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 후기 사회의 탈권위적인 분위기와 연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오륜행실도≫에서는삼강행실도의 다원적 구성 방식에서 한 화면에 한 장면을 담는 일원적 구성 방식이 정착되었다. 그리고 공간 표현에 있어서 원근에 따른 깊이감이 충실해졌다. 또한 대상이 붓으로 그린 것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회갑연 행사를 기록한 백서이다. 의궤도로는 처음으로 필사가 아닌 판화로 제작되면서 크기도 작아지고 무게도 가벼워지는 등 실용적인 형태로 바뀐 변화를 보였다. 의궤도는 매우 전통성이 강한 분야인데 이처럼 공문서에까지 판화가 사용된다는 사실은 당시 판화의 제작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방증하는 것이다.

이 의궤도의 형식은화성성역의궤 華城城役儀軌를 비롯하여 궁중 잔치의 의궤인 진찬의궤(進饌儀軌진연의궤(進宴儀軌진작의궤(進爵儀軌) 등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 말기에는 내용에 있어서 다양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태상감응편도설 太上感應篇圖說≫(1852)·≪텬로력뎡≫(1896)·≪회상영적실기 繪像靈蹟實記≫(1915) 등 도교·기독교·천도교 등 조선 말기에 성행한 종교 서적의 삽화로 판화가 활용되었다. 그리고대방초간독 大方草簡牘≫(1921)·≪해강난죽보 海岡蘭竹譜와 같은 화보류(畫譜類)도 발간되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는 시전지(詩箋紙일반 회화·민화(民畫) 등 판화가 생활 미술로 확산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들 가운데는 많지는 않지만 다색 판화가 시도되었다.

20세기를 전후하여 석판 기법의 수용을 계기로 전통적인 목판화는 서양의 판화에 밀려 사라지게 되었다. 1980년 전후로 미술의 대중화를 표방하여 목판화 운동이 일어나는데, 민주화 운동과 같은 정치적인 성격을 띠면서 보다 강렬한 표현 방식을 보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판화 [版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31141&cid=46660&categoryId=46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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