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나 작가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매화는 겨울을 달래는 봄의 마음이다.>
겨울에는 움츠러든 몸에 우울한 기분이 든다.
새삼 고독과 절망이라는 단어를 곁에 두게 된다.
무거워진 마음에 활로를 여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겨울 속의 봄 생각이 아닌가 싶다.
차디찬 겨울 속에서 우리는 봄을 기다린다.
겨울 속에서 봄 생각은
한 없이 피폐해진 마음 속에 한줄기 빛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매화는 겨울을 달래는 봄의 마음이다.
<바람을 읽는 대나무>
대나무는 속은 비었으나 기운은 왕성하여 하늘을 찌를 듯하다.
속은 비었지만 비운 독에 오히려 신선하다.
대나무는 바람을 잘 맞아서 먼 바람이 이곳에 당도한 내력을
잘 듣고 또 잘 살아낸다.
바람에 휩쓸리고 바람을 받아내는 댓잎의 각가지 모양새처럼
우리의 마음도 감정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달라지는 감정 선을 어떻게 처리하고 받아 들이냐에 따라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한다.
마음의 어두움도 밝음도 내안에서 나온다면...
겨울은 보내고 봄바람을 맞이해 보자.
<소연 김수나 전 ‘봄바람에 화답하다’에 부쳐>
봄의 여운이 온 누리에 가득한 요즘!
그저 생각만 하여도 미소 머금어지는 계절에 먹그림 집 소연묵우가 인사동에서 전시를 한다니 더욱 즐거워집니다.
소연은 나와의 인연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나 원광대학교 1회 졸업생으로 그동안 농축되어 온 세월이 있었기 때문에 발전의 결과를 보이고 있다 여겨집니다.
그동안 후학들을 지도하다보면 마음이 급해 스스로 무너짐도 모르고 자아에 취해 욕심에 찬 결과물으 보이기도 하는데 소연은 늘 한결 같은 마음으로 겹겹이 쌓이게 하려는 노력이 너무도 귀하게 다가옵니다.
누군들 좋은 화가가 되고 싶지 않을까 만은 문인화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하여 그 속에 담겨진 의미를 나만의 철학적 서양의 재해석으로 드러내 보여 감상자로 하여금 자연을 느끼고 노닐며 교훈성을 취하게 하는 특질을 간직한 장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연의 이번 작업을 보면 자연에서 배운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이 주는 희망을 표현하려 하였고, 자연에서 위로 받는 느낌 자연에서 얻는 밝은 에너지를 담아 내고 있습니다.
더불어 소연은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라 여겨집니다.
어릴 적 소망과 꿈을 펼쳐 뵈고 있다는 생각이 그의 화면 곳곳에서 알록달록 그 시절을 회상하며 조각조각 퍼즐을 맞추어 가며 완성해가는 듯합니다.
화실 동료들에게 소연은 ‘핑크공주’라는 별칭으로 불리 웁니다.
그의 외모와 마음에서 풍기는 아름다움이라 여겨집니다.
귀하게 바라 봐 주는 시선에 답하려는 노력 또한 더더욱 요구 됩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 길…
그러기에 가 볼많나 기대가 그대 가슴에 있지 않은가…
어렵고 끝없는 길이지만 그 길을 행복으로 승화시키며 가길 바라네.
어렵고 끝없는 길이지만 그 길을 행복으로 승화시키며 가길 바라네.
끝으로 강호제현의 지도편달을 앙망합니다.
- 소리산 움막에서 김영삼
소연 김수나 작가님은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서예과 석사를 졸업하셨어요~~~~^^
소연 김수나 작가님은 개인전 6회 전시를 하셨어요
개인전 전시를 한 곳은
2019년 봄바람에 화답하다(서울 인사아트센터),
2017년 군산예술의전당 초대전 꽃은 하루 아침에 피지 않는다
2017년 독락전(서울 한국미술관)
2016년 독락전(군산 예술의 전당)
2012년 먹빛 담은 이야기(군산 시민문화회관)
2009년 전북아트페어(전주 소리문화의 전당)
에서 전시를 하셨어요
소연 김수나 작가님은 기획 및 초대전 30여회 전시를 하셨어요.
단체전 전시를 한 곳은
2018년 청춘의 농담(한국 서예의 미래전)서울 예술의 전당
2017년 마음 그림전
2017년 먹그림회 회원전(인사동 경인 미술관)
2016년 김수나 개인전
2016년 익산 원 갤러리
2016년 군산 예술의 전당
2015년 한국문인화의 오늘(인사동 미술세계)
2015년 마음그림전
2015년 먹그림회 회원전(인사동 경인미술관)
2015년 문인화 정신과 다양한 부채전(인사동 경인미술관)
2014년 마음그림전
2013년 한중 교류전
2013년 군산미술협회 회원전
2012년 한중 교류전(쭝국 연태박물관)
2012년 환경미협전
2012년 전북여성위원회(서울 인사동)
2011년 한중교류전
2011년 군산미술 어제와 오늘전
2011년 환경미협전
2011년 전북여성위원회
2011년 세계전북비엔날레
2010년 향토작가 발굴 프로젝트(군산시청)
2010년 전북여성위원회
2010년 전라북도초대작가전
2009년 전북 여성위원회 창립전
2009년 원광대학교 서예과 창립 20주년 기념전
2009년 전라북도초대작가전
2009년 아트페어 초대전
2008년 한국의 및(이태리 밀라노 초대전)
에서 기획전 및 초대전 전시를 하셨어요~~~^^
소연 김수나 작가님의 수상경력은 8회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계셨어요~~~^^
수상된 내역은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대상(2016)
월간서예대전 대상(2016)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입선(1991,2014,2015)
전라북도 미술대전 특,입선(91~07)
전국서화백일대상전 금상(95)
추사휘호대회 특,입선(93,94,06,07,08)
5.18 광주휘호대회 특선(05,06,07)
의제 허백련 전국여성서화백일대상저 입선(94,95)
전국서예휘호대상 우수상
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계셨어요
소연 김수나 작가님의 강의 경력은
한라건설, 지방항만청, 군상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워크샵, 국립생티원 서예 문인화, 플라즈마연
구소에서 강의를 하셨어요.
소연 김수나 작가님의 심사경력은 전라남도미술대전, 남도서예문인화대전에서 심사를 하셨어요.
소연 김수나 작가님의 작품 소장처는 국립현대미술관(정부 미술은행)에서 소장을 하시고 계셨어요.
소연 김수나 작가님은 현재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월간서예대전 초대작가, 전라북도미술대전 초대작가, 추사휘호대회 초대작가, 한국전퉁문화예술진흥협회 초대작가, 군간대학교 평생교육원 캘리그라피와 먹그림 전담교수, 군산대학교 평생교육원 서예 문인화 전담교수, 소연서예실 원장의 직책을 가지고 계셨어요~~~^^
아래 부터는 김수나 작가님 작품들이에요~~~~^^
바람이 전하는 말
봄 뜻
향기로 전하는 봄
봄바람을 기다리며
봄바람의 속삭임1
바람 春
매화 2
봄바람에 화답하다
매화 1
<내가 본 전시회 느낌>
장승업의 작품을 본 듯한 느낌을 주는 김수나 작가님을 관람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제가 본 김수나 작가님의 작품은 맑고 청량한 느낌을 주는 듯 했어요.
김수나 작가님 작품들의 전통적인 한국화의 소재인 매화, 대나무 등의
모티브로 각각의 주제에 맞게 작품을 그리시는 것 같았어요.
김수나 작가님의 작품을 보게 되어서 행운이였고 다음 전시회가 또 기대가 되네요.
작품 사진들은 작가 및 관련 관계자의 촬영 허락으로 제작 하였습니다.
이 작품 사진들 안의 그림들은 작가 및 관련 관계자의 허락 없이 무단 사용을 할 수 없습니다.
아래는 인사아트갤러리 위치에요~~~~^^
아래는 김수나 작가님과 같은 한국화 및 한국화 작가들을 찾아보았어요~~^^
<한국화>
한국화(韓國畵)는 근대 이후에 한국의 전통적인 기법과 양식으로 그려진 그림을 서양화와 구별하기 위해 부르는,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대한민국에서 보통 동양화(東洋畵)라고 하면 한국화를 의미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화(朝鮮畫)라고 부른다. 빛의 변화를 사용하는 근대 컨셉 미술처럼 오래된 미술을 포함한다. 붓으로 작업하는 캘리그라피는 유화에서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 개요
한국인의 사상과 생활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화론(畵論)과 화법이 서구의 것과는 판이하다. 공간에 대한 생각이 한국인 특유의 것 중의 하나인데, 화면 즉 평면 위에 먹을 주로 하는 선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되 여백을 중시하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화면을 그저 종이나 비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무한한 공간의 일부로 생각한다. 이곳에 선형체(線形體)를 배치나 구성하는 것으로 공간감(空間感)을 화면에 도입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을 그림의 지상과제로 삼는데, 이는 공간감 즉 무한감의 구현 여부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궁극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선으로 그린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선 형태야말로 작가의 심성 발로가 정확하며 공간과의 연결이 쉽도록 간격이 많아서 이를 택한다는 것이다. 한국화의 주요 특성은 이 두 가지 공간감과 선 형체인 것이다. 이는 바로 동양철학에 기본을 두었기 때문에 필연적인 동양의 회화양식 곧 그림의 한 양식인 것이다. 대별하여 동양화에 두 개의 종파가 있는데 하나는 남종화(南宗畵)요 또 하나는 북종화(北宗畵)이다. 흔히 남화·북화로 약칭하는 그것이다. 정신면은 물론이요 화법도 서로 다른 점이 있다.[1]
조선 중엽의 겸재 정선이나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 등이 한국의 산수·풍속 등을 사생하여 고유한 것을 이루었다. 또 전문적인 그림 공부를 쌓지 않고 그림에 손댄 이들이 많은 데 이것은 민화(民畵)라고 전해지며 그 천진난만한 세계는 한국의 민족성을 잘 구현하고 있다. 이것도 모필선(毛筆線)으로 된 형태에 색을 칠한 것으로 편화(便化)한 흔적이 많은 장식적 그림들로, 한국 특유의 것이다.[2]
● 분류
남종화[편집]
선불교(禪佛敎) 남종선(南宗禪)의 기본 사상인 돈오(頓悟)가 그대로 남종화(南宗畵)의 정신이다. 그러므로, 그림의 기술보다는 휘호자(揮毫者)의 정신과 교양을 더 중시하며, 이것이 이루어진 연후에 작화(作畵)할 때 격조 놓은 작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화는 문인·사대부 간에 여기(余技)로 행해지는 문인화와 통하는 점이 많아서 문인들의 비호하는 바가 많았다. 예를 들어 '상남폄북설(尙南貶北說)' 같은 것은 명대의 동기창(董其昌), 막시룡(莫是龍) 등이 제창한 것으로 남화의 우위성을 강조한 것이다.[3]
북종화[편집]
북종화(北宗畵)는 선(禪)의 북종(北宗)과 연관성 있는 생각으로 점오(漸悟)의 길을 걷는다. 화가가 품격 높은 그림을 이루려면 먼저 화기를 기초서부터 수련하여 점점 그 기(技)와 식견이 이루어져 세련됨을 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은 높은 품격의 그림을 얻자는 것이 남화의 생각과 같은 것이지만, 학화 과정(學畵過程)과 이에 임하는 정신적 태도를 좀 달리 한다.[4]
● 화법
화법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즉 구륵법(鉤勒法)과 몰골법(沒骨法)이다. 구륵은 묘사할 대상의 윤곽을 선으로 그린 후에 색을 칠하는 것이고 몰골은 담묵(淡墨)이나 채색으로 먼저 도포하듯 찍어서 그리고 마르기 전에 농도 있는 먹이나 채색으로 선적 골기(線的 骨氣)를 주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묘법을 구별해 보면 이 두 화법에 속하지 않는 것은 드물다.[5]
화법에 있어서 남화와 북화가 다소 다른 점이 있다. 남화는 중국의 남방에서 포교된 남종선의 영향이 정신적 기조임과 동시에 남방의 기후·풍토 등이 나타난다. 남방의 산세는 온화하여 그림에 취급되는 산야 역시 유연 평온하다. 또 온난한 기후 탓으로 아교를 사용하는 채색법이 부적당하기도 하여 필세(筆勢)와 기운(氣韻)을 중시하는 선염법(渲染法)을 주로 사용한다. 묵과 선이 주가 되고 채색은 담채로서 이를 돕는 정도로 쓰인다.[5]
북화는 북방의 험준한 산악이 그려지는 수가 많으며 천연석채(天然石彩)를 사용하는 색채화가 특징이다. 금벽산수(金碧山水)나 사녀도(仕女圖) 등이 바로 이런 것인데 그렇다고 묵 중심의 북종산수(北宗山水)가 없는 것도 아니다.[5]
한국의 그림 역시 의취(意趣)는 이런 방향으로 이어 내려왔지만 조선 중엽의 겸재 정선이나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 등의 우리의 산수·풍속 등을 사생하여 고유한 것을 이루었다. 또 전문적인 그림 공부를 쌓지 않고 그림에 손댄 이들이 많은 데 이것은 민화(民畵)라고 전해지며 그 천진난만한 세계는 한국인의 민족성을 잘 구현하고 있다. 이것도 모필선(毛筆線)으로 된 형태에 색을 칠한 것으로 편화(便化)한 흔적이 많은 장식적 그림들로, 한국인 특유의 것이다.[5]
● 용구
한국화에 쓰이는 용구와 재료는 종이·붓·먹·벼루와 채색이다.[6]
화용지(畵用紙)는 화선지(畵宣紙)가 으뜸이고 화견(畵絹) 그리고 한국의 민화나 그의 고화(古畵)에 쓰인 장지(壯紙) 등이 있다. 북종 색채화에 쓰이는 것은 지본(紙本)이건 비단이건 간에 침윤(浸潤)이 심하지 않은 것이 적당하다. 왜냐하면 아교로 포수(泡水)한 후 채색이나 먹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화의 용지는 화선지와 같이 침윤이 양호하며 필획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쓴다.[6]
붓은 북화의 도포 위주의 그림에는 화용필로서 크게 가리는 것이 없지만 남문인화(南文人畵)의 경우는 양호장봉필(羊毫長鋒筆)을 택하며 그 운필(運筆)과 필세(筆勢)를 중히 여긴다. 먹도 청(靑)·현(玄)·흑(黑)의 3색이 있으니 화자(畵者)의 선택하는 바가 된다.[6]
벼루는 서예(書藝)에서와 같이 마묵(磨墨)이 곱게 되고 오래도록 마르지 않는 것으로 중국의 단계연(端溪硯)을 친다. 흡연·조하연(桃河硯) 등이 다음가는 것들이다. 한국의 남포연(藍浦硯)이 많이 쓰이지만 연면(硯面)의 봉망(鋒芒)과 수목의 불건도(不乾度)에 있어서 단연(端硯)을 따르지 못한다.[6]
채색은 호분(胡粉)·자토·주(朱)·인지·군청(群靑)·녹청(綠靑)·등황(藤黃) 등 천연 안료를 사용하지만 근래 불변색 인조 안료도 그 수가 많다. 필법은 서와 통하는 것으로, 그 훈련방식은 현완(懸腕)·직필(直筆)·중봉(中鋒)이 기본조건이며, 선의 생명감을 얻는 것을 중요시한다.[6]
참고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ED%99%94
<한국화 작가 - 장승업>
장승업(張承業, 1843년 ~ 1897년)은 조선 말기의 화가이다. 본관은 대원(大元). 호는 오원(吾園), 자는 경유(景猶)이다. 도화서 화원(畵員)을 지내고, 벼슬은 감찰(監察)에 이르렀다. 그의 호인 오원은 자신이 단원(檀園) 김홍도, 혜원(蕙園) 신윤복을 의식해서 "나(吾)도 원(園)이다"라는 뜻에서 지었다.
위키백과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C%8A%B9%EC%97%85
장승업 (張承業)
1843년 ~ 1897년
1. 개요
조선 후기의 화가. 호는 오원(吾園)이다. 오원이라는 호의 유래 중 하나는 추사 김정희가 지어주었다는 설과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처럼 절세 화가의 호에서 착안해 '나도 원(園)이다.'라는 의미에서 나 오(吾) 자에 원(園)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1]
사람에 따라 안견, 김홍도 등과 함께 조선의 3대 화가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고미술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천차만별인테, 왜냐하면 김홍도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자리에 꼽는 인물은 연구자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 두 자리에 자리할 인물로는 신윤복이나 김득신, 심사정, 정선, 이암 등의 화가들이 거론된다. 혹은 3대 화가라는 명칭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차라리 조선의 유명한 화가들로 통칭하자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다.
장승업의 그림은 단순한 필치로 그려졌지만, 필력에 속도감이 있고 대담하다는 평이 있다. 그는 중국 청나라 후기의 필체를 그림에 도입하여 한국식 회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그림의 소재들은 진경산수를 선보인 정선이나 풍속화를 그린 김홍도, 신윤복 등과는 달리 전통 도석 인물화를 고집하여 고루하다는 평가다. 때문에 정선이나 김홍도의 뒤를 이었다면 시대상을 반영한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고미술 사학자들이 많다. 이 말인즉슨, 우리 강산을 그린 그림이 없다는 뜻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정선 이후 한가닥 한다는 화가들은 죄다 금강산을 그려 남겼는데, 장승업은 금강산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명승지와 관련된 그림은 한 점도 없다.[2]
2. 생애
장승업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어 고아가 되었다. 그는 어렸을 시절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웠다. 그가 할 줄 알았던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 뿐이었고 또한 재능도 있었으므로, 그림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술과 여자를 좋아해서 술자리에서 여인이 술을 따라주면 즉석에서 답례로 그림을 그려줬다고 한다. 그림으로 부와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민영환이 고종에게 추천하여 화원으로서 궁궐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궁궐이라는 틀에 박힌 곳에 머무르며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삶을 그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했다. 민영환이 이를 보다못해 "당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며 그에게 묻자 장승업은 "술을 마음껏 마시고 싶다."고 답변하였다. 이를 보고받은 고종은 특별히 명을 내려 오원에게 어느 정도의 술을 허락했지만, 장승업은 성에 차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되었는데, 바로 궁궐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이는 분명한 항명죄에 해당하는 중죄였으므로, 이를 알게된 고종이 노발대발하여 결국 장승업은 군졸들에게 붙잡혀 몽둥이 찜질을 당한 뒤 조정으로 끌려왔다고 한다. 항간에는 주막에서 술에 대취해서 얻어맞아도 맞는지도 모른채 자고 있었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마터면 그는 항명죄로 인하여 참수될 뻔 했지만, 민영환이 고종을 필사적으로 설득하여 겨우 죽음을 모면했다. 물론 천거한 민영환도 책임이 거론되었기에 그렇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승업은 그 사건 후에도 술을 찾아 몇번이나 궁궐을 탈출하려다가 걸려서 호되게 혼쭐이 났다. 그러나 그는 끝내 술을 포기못했는데, 결국 고종의 어진을 그리지 못한채 병으로 인하여 세상을 떠났다. 그를 아는 이들은 그가 술을 찾아 신선이 되었으리라며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원은 만 54살까지 살았으며, 술에 빠져 살았던 취화선이기에 전반적인 그의 생애에서 그의 건강에 대하여 생각하자면, 그의 죽음이 요절이라고 여길 수는 없을 듯 하다. 굳이 따지자면 알콜 중독이 아닐지.
3. 대중매체에서
1980년대 KBS1 특별 드라마 '사로잡힌 영혼' 에서는 그의 역할을 김성겸이 연기했다. 이 드라마에서는 말들을 돌보던 장승업이 갇혀 사는 게 얼마나 지겨운지 모른다며 말들을 무단으로 풀어주는 묘사로써 그의 자유분방함을 더욱 강조했다. 더불어, 이 드라마에서도 작품의 후반부에 고종의 어진을 그리다가 술이 그리운 오원이 끝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채 궁궐을 탈출하는 과정이 잘 그려졌다. 이 작품은 나중에 극본을 각색하여 같은 이름의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장승업을 주제로 한 영화 '취화선'에서 그는 대단한 기인으로 그려진다. 최민식이 오원을 연기했다. 참고로 취화선의 각본가가 도올 김용옥이다. 역시 비범하다... 또한 옛날 디시인사이드에서 인터넷 신조어 아햏햏이 유행했던 때에 널리 알려져 '세상이 뭐라하든 나는 나! 아햏햏이오' 라는 문장으로 패러디되었다. 이후 여기에서 "승업햏자"라는 이름이 파생되었다. 하지만, 아햏햏의 유행이 오래 전에 끝났으므로, 오늘날의 디씨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훈의 삼국전투기에서 곽가의 패러디 대상이 된다.
tvN의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최진기 강사에 의해 소개된 바 있다. 그런데 현대 화가인 이양원(1944년 ~ )의 그림 군마도를 버젓이 장승업의 그림으로 설명하였다(…). 장승업의 군마도가 있긴 한데, 최진기가 소개한 그림과는 다른 그림이다. 관련 글 아마도 한국어 위키백과의 잘못된 정보[3]에 기반하여 강의를 준비했던 듯.[4]
문명 6에서 위대한 예술가(Great Artist)로 등장한다.
참고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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